무해지보험 판매 과열…"제2 DLS 될라 우려"

입력 2019-10-21 17:06
수정 2019-10-22 07:47

“이 종신보험은 기존 상품보다 30% 저렴해요. 그러면서도 10년이 지나 해지하면 115%를 돌려받고, 20년 뒤엔 환급률이 135%가 됩니다.”

최근 보험 영업현장에서 “은행의 연 3%대 정기적금보다 유리한 종신보험이 있다”는 솔깃한 제안을 건네는 설계사가 있다. 이른바 ‘무해지 종신보험’이다. 여기엔 중요한 단서가 달려 있다. 보험료를 내다가 중간에 깨면 돌려받는 돈(해지환급금)이 한 푼도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서류에 다 적혀 있다. 하지만 대충 읽고 서명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장단점 명확한 무해지·저해지 보험

보험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무해지·저해지 보험이 불완전판매(상품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파는 행위)의 ‘시한폭탄’이 될지 모른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국정감사에서 “일부 보험사와 판매대리점(GA)이 무해지 종신보험을 은행 적금보다 유리하다는 식으로 팔고 있어 불완전판매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무해지·저해지 보험은 해지환급금을 없애거나 확 줄인 대신 보험료를 인하한 상품이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에게 크게 주목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무해지·저해지 보험의 신규 계약은 2016년 32만 건, 2017년 85만 건, 2018년 176만 건으로 늘었다. 올 들어선 1분기에만 108만 건이 팔려 지난해 1년치 판매량의 절반을 넘어섰다.

암보험, 어린이보험, 치매보험 등에 이어 최근 생명보험업계의 주력상품인 종신보험에도 무해지·저해지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지난해 라이나생명에서 시작해 중소형 보험사를 중심으로 판매가 활발하다.

업계 ‘빅3’인 삼성·한화·교보생명은 아직 무해지 방식의 종신보험을 팔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종신보험까지 무해지형으로 파는 게 적절한지를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유 의원은 “사망 후 유가족에게 목돈을 주는 종신보험은 보험료가 비싸고 가입기간이 매우 길다”며 “퇴직, 소득 감소 등 보험료 납입이 어려운 상황이 발생해 중도 해지하면 수백만~수천만원을 날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해지환급금이 없으면 보험계약대출이나 중도인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난처한 상황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일부 보험사 판매경쟁 과열 조짐”

무해지·저해지 보험은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다. 중간에 깨지 않고 끝까지 보험료를 낼 자신이 있는 소비자에겐 유리하다. 통상 보험료 납입 완료 시점부터는 일반 보험상품과 해지환급금이 같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보험에 가입한 소비자의 31.7%는 가입 2년 내 해지한다. 지인의 권유에 못이겨 드는 사례가 많아서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무해지 종신보험이 오래 유지되면 보험사에 불리하기 때문에 향후 무리한 디마케팅(해지 유도)이 벌어질 여지도 있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일부 보험사의 무해지 종신보험 판매행태가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은행의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 사태를 연상케 할 정도”라고 했다. 국내 보험업계에서는 ‘일단 팔고 보자’ 식의 단기 성과주의가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혀왔다. 무해지 보험 역시 이런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감원 측은 “무해지·저해지 보험은 같은 보장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며 “불완전판매가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