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경계 허물고 과감한 투자…기업들 '독한 변신'으로 답 찾는다

입력 2019-10-21 16:30
수정 2019-10-21 16:31

기업들이 ‘독한 변신’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먹거리보다는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새 시장에 도전하고, 주력 사업과 전혀 관계없는 영역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도 한다.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보기술(IT) 관련 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자동차나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체들도 발빠르게 바뀌고 있다.

미래 산업에 대규모 투자

삼성전자는 지난해 인공지능(AI)과 5세대(5G) 이동통신, 바이오, 반도체에 2021년까지 총 18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 중에서도 시스템반도체 등 비메모리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비메모리 분야 세계 1위를 차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간의 뇌를 모방한 AI 반도체 핵심 기술인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키우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NPU는 스스로 학습할 수 있어 ‘AI의 두뇌’로 불린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NPU 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R&D) 인력을 현재 200명 수준에서 2030년 2000명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AI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인공지능 플랫폼 개발 기업인 비브랩스와 대화형 AI 서비스 개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플런티 등을 인수한 게 대표적 사례다. 전장사업도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자율주행자동차와 친환경 자동차 등 미래차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술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와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톱3’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업체인 앱티브와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과 앱티브는 각각 2조4000억원을 투자해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2022년까지 4단계 자율주행 시스템을 내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차가 외국 기업과 함께 조(兆) 단위 투자를 결정한 것은 창사 52년 만에 처음이다. 그룹 내부에서는 물론 자동차업계에서도 ‘파격적 투자’라는 평가가 나왔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한 달에 한 번꼴로 전략적 투자를 하고 있다. 차량공유 기업과 자율주행 기술 기업,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제작 기업, 드론(무인항공기) 기술 기업 등 분야도 다양하다. 싱가포르 차량공유 업체 그랩과 크로아티아의 고성능 전기차 업체 리막오토모빌리, 국내 스타트업 코드42 등이 현대차의 투자 대상이 됐다.

해외 거점 늘리고 외부와 협업도 확대

SK그룹은 해외시장 발굴에 적극적이다. 안정적인 내수시장에 기대기보다는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겠다는 목표다. SK그룹은 에너지와 화학, 정보통신기술(ICT), 제약, 배터리 등 분야에서 북미지역을 글로벌 거점으로 삼고 있다.

SK(주)는 미국 듀폰의 웨이퍼사업부와 제약 분야 수탁개발 생산업체인 앰팩 등을 인수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생산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에 17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SK텔레콤은 미국 최대 지상파 방송사인 싱클레어와 5G 기반 방송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유럽도 SK그룹이 공략 중인 시장이다. SK그룹은 최근 베트남을 동남아 시장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 중 하나인 마산그룹의 지주회사 지분 9.5%를 4억7000만달러(약 5300억원)에 인수했다. 올해엔 빈그룹 지주회사 지분 약 6.1%를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에 매입했다. 빈그룹은 베트남 시가총액 1위 민영기업이다. 베트남 증시의 시가총액 중 약 23%를 차지한다.

LG전자는 글로벌 전문가, 해외 기업, 국내외 대학 등 외부와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AI와 로봇 등 미래 산업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LG전자 모스크바 연구소는 러시아 스콜코보 혁신센터의 스타트업과 공동으로 자율주행차 관련 기술 협력을 하고 있다. AI 분야 권위자인 앤드루 응이 이끄는 미국 스타트업 랜딩에이아이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기도 했다.

최근엔 중국의 사물인터넷(IoT) 기업 루미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두 회사는 앞으로 스마트 센서와 스마트 가전을 연동해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AI 스마트홈 서비스를 개발하기로 했다.

LG전자는 마이크로소프트와도 손을 잡았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LG전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플랫폼 ‘애저’를 활용해 인공지능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계획이다. 자율주행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지분 투자도 늘려가고 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