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 21일 오후 4시2분
‘콩순이’, ‘또봇’, ‘시크릿 쥬쥬’ 등 아동용 완구 캐릭터를 보유한 영실업이 홍콩계 사모펀드(PEF)에 팔린 지 7년 만에 국내 교육업체 품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해외에 팔린 국내 업체를 토종 자본이 되사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 2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홍콩 PEF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은 영실업 지분 100%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미래엔·엔베스터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미래엔은 교육 전문기업으로 1948년 설립된 대한교과서가 모체다. 엔베스터는 이 회사 계열 PEF다. 인수가격은 2000억원대 중반으로 알려졌다. BDA파트너스가 매각 주관을, 삼정KPMG가 인수 자문을 맡았다. 다음달까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예정이다.
국내 품으로 되돌아오는 ‘콩순이’
영실업은 1980년 출판사 계몽사의 자회사로 출발한 국내 대표적인 완구업체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여러 차례 경영권이 바뀌다가 2012년 홍콩계 PEF인 헤드랜드캐피털에 팔렸다. 헤드랜드캐피털은 2015년 또 다른 홍콩계 PEF인 PAG에 이 회사 경영권을 넘겼다. 여러 차례 부침을 겪던 영실업은 국내 캐릭터 완구 시장을 개척하며 확고한 지위를 확보했다.
1999년 대형 완구인형으로 탄생한 콩순이가 대표적이다. ‘콩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콩을 좋아하도록’이라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붙인 콩순이는 당시 단숨에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형 캐릭터가 됐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토종 로봇 캐릭터인 또봇을 선보였다. 2012년 3차원(3D) 애니메이션으로 출시한 시크릿 쥬쥬는 ‘패션돌’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13편이 연작으로 제작됐다. 이밖에 메탈리온, 베이블레이드, 스낵월드, 지오메카 캡틴다이노, 강철소방대 파이어로보 등을 잇따라 출시하며 PAG가 인수할 당시 5개였던 브랜드 수가 21개로 늘었다.
교육과 캐릭터의 결합
미래엔은 교과서 출판업체로 출발했다. 국내 최초의 교과서인 ‘농작물’을 발행하고, 교과서 서체인 ‘대교체’를 개발하는 등 국내 교과서 시장의 ‘최초’ 기록을 대부분 갖고 있다.
미래엔의 영실업 인수는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와 신성장동력 발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미래엔은 교과서와 참고서 시장 이외에 70여 년간 회사가 쌓아온 콘텐츠를 디지털화하는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급변하는 출판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행보다. 이 회사가 제작한 업계 최초 웹드라마인 ‘악동 탐정스’는 1000만 뷰를 돌파했다.
영실업은 완구를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개발하는 데 전문성을 갖춘 업체로 평가받는다. 2014년 콩순이를 3D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시킨 ‘엉뚱발랄 콩순이’는 국내 유아 애니메이션 가운데 조회수가 가장 많은 콘텐츠 중 하나로 꼽힌다.
미래엔의 주요 사업인 참고서 시장에서 영실업 캐릭터들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2010년 이후 참고서 시장은 우수한 콘텐츠뿐 아니라 브랜드 파워와 마케팅 능력까지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미래엔은 보수적인 출판업계에서 드물게 ‘인수합병(M&A) DNA’를 보유한 업체로 통한다. 미래엔은 1998년 국정교과서를 인수, 합병했다. 2007년 한솔에듀케어(현 미래엔에듀케어), 2011년 인천 논현 집단에너지(현 미래엔인천에너지), 2016년 제주 오션스위츠호텔 등도 차례로 사들였다. M&A를 통해 신규 사업 발굴에 적극 나선 결과 교육출판, 에너지, 레저, 투자 부문에 걸쳐 1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토종 자본들의 활발한 인수 행보
해외에 팔린 기업을 되사오는 토종 자본의 움직임도 재조명받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토종 PEF인 글랜우드PE가 국내 1호 유리회사인 한국유리공업(브랜드명 한글라스)을 3300억원에 되사왔다. 1998년 세계 최대 유리 및 건축자재업체인 프랑스 생고뱅에 팔린 지 21년 만이다.
2016년 카카오의 국내 최대 음원업체 로엔 인수, 2018년 SK텔레콤의 국내 2위 보안업체 ADT캡스 인수, 올해 SKC의 동박 제조업체 KCFT 인수 등이 국내 기업이 해외 자본에 팔린 토종 기업을 되사온 사례다. PEF업계 관계자는 “주로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들이 해외에 매각된 업체들을 되사온 데 이어 최근엔 PEF와 중견기업이 인수 주체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효/김채연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