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 노동시장은 전년 대비 세 계단 떨어져 141개국 중 51위를 차지했다. 정리해고 비용 116위, 고용·해고 관행 102위, 임금결정 유연성 84위로 나타났다. 노사협력은 130위로 바닥 수준이다. 대립적 노사관계와 경직적 노동시장이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노동개혁에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렸다.
인공지능(AI), ‘긱(Gig) 경제’ 발전으로 향후 노동시장의 패러다임 변화가 불가피하다. 미국 인디애나주 볼주립대 연구에 따르면 2006~2013년 미국에서 사라진 일자리 중 88%가 자동화 관련 요인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는 2030년이 되면 미국 근로자 3분의 1이 자동화로 실직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세계은행은 자동화·AI화로 77%의 일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환율, 세계화, 자동화가 글로벌 제조업 일자리를 위협하는 3대 요소로 거론된다.
한국은 자동화로 고용이 감소하는 직업의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중간 수준이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AI는 인류가 지금껏 고안한 것 중 가장 중요하다. 전기나 불의 발견보다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미 무인점포 아마존 고(Amazon Go)와 같은 신형 일터가 출현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의 종말 이야기까지 나온다. 신한은행은 로봇 기반 업무자동화, 핸디 로봇, 비정형 문서 자동인식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새로운 고용환경에 대처하고 있다.
금년도 OECD 구조개혁 연례 보고서는 “한국이 근로시간은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지만, 생산성은 최고 선진국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동생산성 향상에 개혁의 방점을 둬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파업은 단순히 임금 인상을 둘러싼 갈등이 아니라 미래를 놓고 벌어지는 전쟁이다. 전기차, 무인차 같은 새로운 산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구조조정에 노조가 반발한 파업이다.
전기차 생산이 본격화되면 부품이 줄고 생산 모듈화로 작업 시간이 감소한다. 당연히 생산직 인력 수요도 준다. 변화하는 시장 흐름에 뒤처져 2009년 파산 위기에 몰렸던 GM은 발 빠르게 변신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현대자동차 외부 자문위원이 노사 양측에 “인력 40%를 줄이지 않으면 공멸한다”고 경고했다. 전기차, 수소차 전환으로 2025년 20% 감축에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정도로 GM, 도요타, 폭스바겐 등과 경쟁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노동개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조의 반발을 넘어 노동개혁을 밀어붙였다. 산별노조 대신 기업노조와 협상, 경영 악화 시 해고 요건 완화, 부당해고 시 기업 책임범위 제한 등 5대 개혁의 골자는 노동 유연성 제고다. 노동시장이 유연하게 작동하지 않으면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개혁의 배경이다. 3300쪽이 넘는 경직적 노동법 개정을 통해 일자리 창출의 계기를 마련했다. 10년 만에 최저 수준의 실업률, 정규직 비율 상승, 36만7000개 신규 일자리가 성적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는 탄광노조와 일전을 불사한 개혁으로 고질적인 영국병 치유에 성공했다. 독일은 하르츠 개혁으로 견실한 성장을 회복했다. 프랑스도 노동 유연화 조치로 유럽의 병자에서 건강의 상징이 됐다. 노동 유연성 없이 주력 산업의 경쟁력 확보는 언감생심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5개 완성차의 인건비 비율이 도요타, 폭스바겐, 포드 등 경쟁 업체보다 훨씬 높다.
실사구시적 노동정책으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기업 해외 투자가 2분기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국내 투자는 작년 2분기 이래 감소세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56%가 주 52시간 근로제 준비가 미흡하다. 실효성 있는 보완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탄력근무도 1년으로 확대해 기업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주요 국가에서 이미 보편화된 직무·직급 위주 임금체계도 정착시켜야 한다. 시장친화적 노동개혁이 한국 경제를 살릴 마중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