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D램 생산라인용 극자외선(EUV) 장비를 발주하는 등 EUV 기술을 적용한 D램 양산을 추진 중이다. EUV 공정은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극자외선을 이용해 회로를 그리는 것이다. 기존 불화아르곤(ArF) 공정에 비해 짧은 시간에 고효율·초소형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산업계에선 5세대(5G) 이동통신 확산에 발맞춰 초소형·고성능 D램을 원하는 모바일, 서버 업체 등의 요구와 생산 효율성을 높이려는 반도체 업체의 움직임이 맞아떨어진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이천에 EUV 전용 라인 구축
20일 반도체 장비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네덜란드 ASML에 ‘D램 양산용’ EUV 장비 한 대를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EUV 장비는 세계에서 ASML만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가격은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대당 1500억~2000억원 수준이다. 연구개발(R&D)용 EUV 장비는 SK하이닉스가 이미 두 대 이상 보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와 ASML 간 D램 양산용 EUV 추가 주문에 대한 얘기가 오가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주문한 장비는 SK하이닉스가 내년 하반기 준공을 목표로 경기 이천에 짓고 있는 M16 공장 ‘EUV 전용 라인’에 들어갈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D램 라인용 EUV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ASML은 지난 16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3분기(7~9월) 실적 발표회에서 “차세대 D램 생산에 필요한 EUV 장비에 대한 고객들의 강력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내년엔 (D램용을 포함해) 총 35대의 EUV 장비를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ASML은 장비 주문 업체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파운드리에서 D램으로 적용 확대
지금까지 EUV 장비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의 전유물이었다. ASML의 주요 고객도 파운드리업계 1위인 대만 TSMC와 2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였다. 중앙처리장치(CPU),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등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더 작고 성능이 뛰어난 반도체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부터 선폭(회로의 폭)이 7나노미터(nm·1nm=10억분의 1m)인 공정에서 EUV 장비를 이용해 제품을 양산 중이다. TSMC도 최근 ‘N7+’로 이름 붙인 7nm 기반 EUV 공정에서 제품을 양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세공정에는 EUV가 적합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EUV 장비를 D램 양산에 활용하려는 것은 5G 이동통신 확산 등으로 초소형·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공정이 미세화되면 같은 웨이퍼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하고, 성능(집적도)도 높일 수 있다.
최근 D램 미세공정 기술은 10nm 초반대까지 발전했다. 현재 D램 생산에 널리 쓰이는 ArF 공정에서도 10nm대 초반 D램을 양산하는 게 가능하다. 문제는 효율성이다.
ArF 공정에서 미세회로를 그리려면 복잡한 회로를 여러 부분으로 나눠 겹쳐 그리는 ‘패터닝(patterning)’ 과정이 필요하다. EUV 장비를 쓰면 패터닝 과정을 줄일 수 있다.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EUV 장비를 활용하면 고효율·초소형 칩을 생산할 수 있고 제조 시간도 크게 줄어들다”며 “가격이 비싸더라도 EUV 장비를 주문하는 게 장기적으론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업계에선 EUV 장비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과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EUV 전용 라인 준공 시기, 기술 개발 일정 등을 감안하면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EUV 공정에서 D램이 양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 EUV(극자외선) 공정
극자외선(extreme ultraviolet) 파장의 광원을 이용해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제조공정. 기존 공정에 적용 중인 불화아르곤(ArF) 광원보다 파장이 약 13분의 1 수준으로 짧아 패턴을 더 미세하게 새길 수 있다. 공정 단계를 줄여 원가를 절감할 수 있고, 반도체 제품을 작게 만들 수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