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청년, 나눌 파이 작아 갈등…기업 키워 일자리 늘리는 게 해법"

입력 2019-10-18 17:25
수정 2019-10-20 18:04

“갈등을 해결하려면 갈등에만 주목하지 말라.”

‘586세대’를 바라보면서 청년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어떻게 해소할지를 놓고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 뒤 내놓은 조언이다. 18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586세대와 청년세대가 작은 파이를 놓고 싸우게 하는 지금의 저성장 구조를 탈피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를 위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업과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쉽게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586세대 중심으로 견고해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타파하고, 연공서열 중심의 급여 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경의 장진모 경제부장 사회로 열린 좌담회에는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청년운동단체 청년생각의 이재현 대표, 핀테크 스타트업 스몰티켓의 김정은 대표도 함께했다.

▷사회=586세대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최대 기득권이 됐다는 비판이 많다.


▷이근면 전 처장=586세대는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의 발전과 함께 기득권을 쌓아왔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586세대에 주어졌던 기회가 청년세대에도 돌아가고 있느냐다. 586세대의 기득권에 주목해 양보를 받아내는 게 아니라 사회에 진입하는 20대에 어떤 경쟁력을 키워줄 것인가를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 586세대가 단순히 조직을 떠난다고 해서 20대 고용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세대 갈등으로 접근해선 문제를 풀 수 없고 세대 간 역할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를 살펴봐야 한다.

▷조준모 교수=각종 통계를 보면 586세대의 경제 기득권이 가장 오래 유지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입한 시점(1990년)부터 불과 5년 만에 1950년대생을 제치고 전체 소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1970년대생은 같은 성과를 달성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최근 정년을 만 65세까지 연장한다는 논의까지 나오자 ‘586세대 장기집권’에 대한 비판이 나온 것이다. 일자리를 포함한 경제 전반에서 세대 간 상생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전 처장=세대 간 감정싸움보다 소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중앙정부부터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까지 소통 없이 청년정책을 세우고 있다. 정작 정책 대상인 청년들의 불만은 풀리지 않는다. 문제와 대책이 따로 놀고 있다.

▷사회=무엇을 위한 소통인가. 양보를 위한 것인가.

▷이 전 처장=586세대는 기득권 세대지만 가정에서는 청년들의 부모다. 소통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586세대도 주고 싶지만 청년세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 못할 수도 있다. 소규모 모임 등 공동체에서 다양하게 소통할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다.

▷김윤태 교수=세대 내 불평등도 주목해야 한다. 청년세대 중 부모의 학력과 사회적 자본, 인맥 등을 통해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현상이 큰 문제다. 청년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짜인 사회구조와 정부 정책도 살펴야 한다. 교육과 복지, 사회보험 등이 사회적 약자인 청년에게 불리하게 설계돼 있다.

▷김정은 대표=세대 간 갈등에만 주목해선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점에 동의한다. 보험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586세대가 빠른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한편으로는 586세대의 경륜과 경험이 사업에 도움이 될 때도 많다. 적절한 공간과 기회만 주어지면 젊은 층과 586세대가 만나 시너지를 낼 여지가 크다.

▷사회=정말로 청년들이 586세대에 분노하고 있는가.

▷김 교수=청년고용률이 50%를 밑도는 데다 일자리를 잡아도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서비스업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벌어들인 소득과 견줘 주거비는 높은 수준이다. 결혼해서 자리잡고 살기 어려운 환경이다. 결혼·취업·연애를 포기한 이른바 ‘3포 세대’가 나온 배경이다. 청년들이 이 같은 비관론에 빠진 것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책임감을 갖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치권이 주도적으로 대안을 내놓아야 하지만 지역구에만 관심을 쏟는다. 청년들을 위한 예산이 수십조원씩 편성이 됐다가도 상당액이 삭감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정치인들이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고 있다.

▷이재현 대표=당연히 분노한다. 하지만 586세대 전체를 향한 것은 아니다. 똘똘 뭉쳐 카르텔을 형성한 특정 586세대에 분노하는 것이다. 586세대에 비해 가진 것이 적은 청년세대는 그나마 싸워야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공정을 강조하는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의 586세대는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조명한다. 청년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점도 분노하는 부분이다.

▷사회=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자 등도 586세대인데 정보기술(IT)업계의 기득권으로 봐야 하는가.

▷김 대표=그분들이 창업했던 시기엔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지금은 스타트업이 쏟아지며 좋은 인력을 구하기가 힘들다. 개발자 인력 품귀 등의 문제는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 지적됐다. 하지만 교육 시스템 등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스타트업 운영자로선 좌절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기업을 키울지 고민된다.

▷김 교수=청년세대의 현실은 암울하다. 외환위기 후 비정규직 비중이 늘면서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확대됐다. 586세대에 비해 장기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바뀌었다. 주거비용이 크게 오르며 서울에 사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정치권이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지만 국회를 장악한 586세대는 지역 공약에만 신경쓰고 있다. 청년과 사회적 약자에는 관심이 적다. 노동단체와 시민단체에서도 비주류다. 청년세대가 제대로 의견을 말하고, 요구사항을 정책에 반영시키기가 어렵다. 586세대가 책임지고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조 교수=2007년 출간된 <88만원 세대>는 청년들에게 “분노하라”고 했다. 2010년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답답한 청춘을 어루만졌다. 그런데 지금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유행이다. 분노할 힘도 없어 축소지향적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청년이 타고 올라갈 사다리를 구조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 등 핵심 노동시장은 정년 연장 등으로 청년세대를 아예 뽑지 않으려 한다. 여기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세대는 주변부를 맴돌 뿐이다.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는 신규 진입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

▷사회=기득권 문제도 있지만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청년들의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 전 처장=청년의 가치와 도전을 옹호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지난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이 유행했다. 지난 20여 년간 청년정책들이 나왔지만 별반 성과가 없었다. 한국인들은 세계로 나가 일해야 한다. 그래야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청년을 적극 키워줘야 한다. 586세대가 많은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 이후 국민소득이 비약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한 시점과 일치한다. 세계적 기업을 만들어내는 정책이 전체 파이를 키우고, 청년들의 박탈감도 해소할 수 있다. 세대 간 경쟁은 나눠 먹을 것이 없어서 나타나는 문제다. 파이가 크면 싸우지 않는다. 세계적인 기업이 10개만 더 나와도 상당수 문제가 해결된다.

▷조 교수=세계적인 기업을 육성하고 젊은이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 기성세대에 맞춰진 직업교육을 혁신해 글로벌 수준의 직업인을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 노동시장과 임금체계도 청년세대의 세계시장 진출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되고, 우수 인재가 잠재력이 큰 기업에 모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노동시장은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

▷사회=정부에서 정년 연장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세대 갈등 요인이 될 우려가 있다.

▷조 교수=단체협약에 따라 개인의 자율성이 억눌리는 한국만의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독일은 법과 단체협약으로 규정된 노동조건이라도 개인이 적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요일 대신 수요일에 쉰다든지, 주 52시간 이상 근무한다든지 여러 조건을 청년이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년 연장도 그렇다. 일본에선 70% 넘는 기업이 자체 필요에 따라 정년을 연장한 뒤 나머지 기업의 연장을 유도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한국에선 2016년 60세로 정년을 늦춘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65세 연장안이 나왔다. 노동시장 규제가 개인과 기업의 결정권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전 처장=전환기에 새로운 기회가 온다. 이해진 창업자 등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던 시대에 기회를 잡았다. 지금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을 중심으로 기회가 오고 있다. 하지만 제2의 네이버나 엔씨소프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응원해야 한다. 청년과 고령층 고용을 1 대 1로 보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생산직 노조 카르텔이 문제라지만 자동차나 선박 용접 분야에 종사하려는 청년이 얼마나 되겠는가. AI와 빅데이터 등 청년이 관심을 보이고 사회적으로도 필요한 분야에서 직업교육과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조 교수=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 중 상당수는 다양성총책임자(CDO: chief diversity officer)를 두고 있다. 기술과 인종, 세대별 차이에 관한 문제를 집중 관리하는 자리다. 단순한 갈등 관리를 넘어 조직의 생산적 문화를 창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586세대와 청년세대 간 갈등을 줄이고 각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기업 경쟁력 측면에서 중요하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그렇다. 청년세대가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않는 조직과 사회는 그 미래가 어둡다.

▷김 교수= 정년연장도 필요하지만 청년 고용에 미치는 영향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련 정책을 짜야 한다. 불평등의 해법은 교육을 바탕으로 모색해야 한다. 문·이과로 쪼개진 교과 과정을 통합하는 대책부터 고민할 때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철학과 정치, 사회학 등의 지식을 쌓아야 한다. 교과과정을 문·이과 통합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과정을 뒷받침할 재정적 지원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들의 높은 학비와 연금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고민할 때다.

정리=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