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언더독'의 반란

입력 2019-10-18 17:23
수정 2019-10-19 00:19
스포츠의 매력은 객관적으로 열세인 팀이 가끔 이기는 의외성에 있다.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선 투자(돈)가 절대적으로 전력을 좌우하지만 가끔은 ‘각본 없는 드라마’ 같은 반전이 일어난다. 그런 일이 한국과 미국의 가을야구 시즌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언더독(underdog)의 반란’이다.

언더독은 본래 투견(鬪犬)에서 밑에 깔리는 개를 뜻했다. 선거, 스포츠 등에서 ‘이기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약자’에 비유된다.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여론조사에서 줄곧 뒤지던 해리 트루먼이 극적으로 당선된 게 그 유래다. 사람에겐 강자(top dog)보다 약자를 응원하는 심리(언더독 효과)가 있다.

국내에서 ‘언더독의 반란’ 주인공은 프로야구단 키움 히어로즈다. 전력·재정·팬층이 빵빵한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를 연파하고 5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2008년 창단한 키움은 모기업이 없어 스폰서를 유치해 구단을 꾸린다. 한때 ‘선수를 팔아 연명하는 팀’이란 오명도 들었지만 유망주들을 화수분처럼 키워내 강팀 면모를 갖췄다.

미국에선 창단 50년 만에 처음 월드시리즈에 나서는 워싱턴 내셔널스가 화제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힘겹게 통과하더니, 내셔널리그 최고승률팀 LA 다저스와 ‘가을 좀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마저 제압했다. 지난 6월까지도 승률 3할대에 감독 경질설까지 돌던 팀인데 극적 반전의 계기가 있었다. 부진하던 대타요원 헤라르도 파라가 자신의 등장곡을 경쾌한 ‘아기 상어’로 바꾸고 맹활약한 뒤 분위기가 돌변했다. 이후 끈끈한 팀워크로 뭉쳐 6할대 승률로 승승장구했다. 우승 경험이 없는 키움과 워싱턴이 어디까지 날아오를지 주목된다.

축구에서도 언더독의 반란이 종종 일어난다. 2000년 프랑스 4부리그 팀 칼레가 FA컵에서 1부리그 강호들을 연파하고 준우승했던 일명 ‘칼레의 기적’이 전설처럼 회자된다. 올해 국내 3부리그(K3)의 화성FC가 FA컵 준결승에 올라 한국판 ‘칼레의 기적’을 이룰지 관심이다.

늘 강자가 이기는 세상이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약체도 ‘원팀(one team)’으로 뭉칠 때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봤던 대로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국가라고 다를까 싶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