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기술’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technology(테크놀로지)’이고, 다른 하나는 ‘art(아트)’다. 광고산업에서 ‘기술’은 당연히 ‘아트’였다. 그 ‘아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소통의 기술이었고,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연결하는 아이디어의 기술이었다. 미혼자들이 모이면 ‘잘 자, 내 꿈 꿔’라는 카피를 얘기했고, 기혼자들이 모이면 ‘남편 퇴근 시간은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카피로 술안주를 삼았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광고를 얘기하면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5G(5세대 이동통신)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광고의 ‘기술’ 하면 아트가 아니라 ‘테크놀로지’라고 생각하게 됐다. 온라인으로 연결돼 살아가는 소비자들은 디지털 세상에 데이터를 남기고 디지털 미디어에서 광고를 접한다. 이 때문에 빅데이터로 메시지를 만들고 AI로 미디어를 최적화해 5G망을 통해 집행해야 하므로 광고의 기술은 테크놀로지라는 것이다. 이렇게 아트로서의 광고는 어느 순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사막의 외로운 야자수가 돼버렸다.
필자가 30대 광고인이었을 때 이런 카피가 있었다. “얘, 비 온다. 빨래 걷어라!” 신경통에 잘 듣는 소염진통제 카피였는데, 기상청보다 더 정확한 할아버지 무릎 예보, 즉 생활 속 살아있는 언어를 카피화했다고 해서 카피 교육에 항상 소개되던 우수사례였다.
이 광고에 등장하는 할아버지처럼 어느덧 광고 할아버지가 된 필자의 무릎은 지금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건 지나치다. ‘광고=테크놀로지’는 아니다.”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다. 아트로서의 광고가 없어졌을 때 일어날 일들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아트로서의 광고가 사라지면 광고비를 재원으로 운영되던 지금까지의 언론이 사라진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영신문과 방송국 외에는 모두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다음으로 아트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광고인이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이 사회의 주축을 이루는 소통 연구소 하나와 콘텐츠 아이디어 연구소 하나가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바람이 거세게 불 때는 모든 것이 기울어져 보인다. 그러나 그 기울어진 모습이 진실은 아니다. 누군가는 바람 속에서도 바로 선 진실을 봐야 한다. 진실은 ‘광고의 기술은 테크놀로지와 아트, 둘 다’라는 것이다. 그 어떤 분야보다 시대상을 반영해야 하는 광고가 테크놀로지를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1차 산업혁명 이전부터 존재했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기술인 아트라는 본질을 외면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광고산업은 어떻게 될까.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라는 카피로 스티브 잡스와 함께 오늘날의 애플을 만든 광고인 리 클로가 칸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 세미나에서 한 말에서 미래 광고산업의 한끝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광고산업에 카메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모두 그 테크놀로지에 경도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아티스트가 그 테크놀로지를 익히자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의 광고산업 운전석에는 테크놀로지가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트가 그 운전석에 앉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