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河東郡)은 지명에 담긴 뜻 그대로 강 동쪽에 자리잡은 고장이다. 강은 길이 212.3㎞의 섬진강(蟾津江)을 말한다. 강을 경계로 하동군은 전남 광양시·구례군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경남 함양·산청군, 동쪽으로는 진주·사천시, 남쪽으로는 바다 건너 남해군과 경계를 이룬다.
섬진강은 하동의 물결이자 숨결이다. 하동은 안개가 많고 습한 기후로 화개·악양면을 중심으로 야생차밭이 잘 조성돼 있다. 1066농가가 720㏊의 녹차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섬진강 맑은 물이 빚어낸 모래 속 재첩 역시 지역민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해 있다. ‘거랭이’라는 손틀 도구로 채취하는 전통 방식의 섬진강 재첩잡이가 아직도 전해진다. ‘십리 벚꽃길’도 섬진강을 따라 이어져 풍광이 대단하다.
지리산과 섬진강의 조화가 만들어낸 하동의 풍토와 습속은 옛 문헌에도 잘 나타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땅이 기름지고 기후가 따뜻하다’고 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습속이 검소하고 솔직함을 숭상한다’고 기록했다. 하동군은 지리산과 섬진강의 강점을 살려 미래 100년 먹거리를 관광분야에서 찾고 있다.
지리산이 낳고 섬진강이 기른 땅
하동군을 일컬어 ‘지리산이 낳고 섬진강이 기른 땅’이라고 부른다. 경남의 서남단에 있는 하동군은 북쪽으로 지리산 자락에 닿아 있고, 남쪽으로 가면서 차츰 낮아져 남해와 접한다. 주 하천인 섬진강은 북쪽의 진안고원에서 발원해 남동쪽으로 흐르고 하동군의 서쪽 경계를 이루며 남해로 흘러든다. 지역을 대표하는 ‘녹차와 재첩’은 지리산과 섬진강의 산물이다.
세계 속 명품 관광도시로 도약하려는 하동 관광의 중심에도 지리산과 섬진강, 남해 바다가 자리하고 있다. 세계에 하동을 알리는 첨병 또한 녹차와 재첩이다.
하동 녹차가 스타벅스를 뚫은 때는 2017년이다. 녹차는 하동에서 연간 1150여t을 생산해 189억원(2018년 기준)의 소득을 올리는 대표 특화작목이다. 대부분 국내 판매에 의존한다. 군은 녹차의 수출 확대를 위해 해외 차 시장 공략에 나섰고, 세계 최대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에 친환경 가루 녹차 100t(215만달러)을 납품하기로 하면서 하동을 세계에 알렸다. 야생차 재배법이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되면서 더 주목받고 있다. 2022년엔 ‘하동야생차 엑스포’를 열어 세계에 ‘녹차의 고장 하동’을 각인시킬 계획이다.
섬진강 재첩 역시 하동을 알리는 대표 브랜드로 국내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475가구, 596명이 재첩잡이에 종사해 연간 약 740t(약 375억원)을 생산한다. 섬진강에서의 전통 방식 재첩잡이 어업이 지난해 12월 국가중요어업유산에 지정됐다. 군은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섬진강 재첩문화축제는 독특한 콘텐츠로 2017년 하동을 ‘세계축제도시’에 올려놓았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열리는 ‘토지문학제’도 하동의 자랑거리다.
해외 마케팅 효과, GRDP 증가율 1위
하동의 청정 이미지를 앞세운 글로벌 마케팅 효과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2014년 21개 품목, 600만달러에 불과했던 농수산물 수출은 지난해 40개 품목, 4400만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해외시장 개척과 내수판촉 활동을 강화해 녹차와 한우, 밤, 파프리카 등 대상 품목이 두 배 늘었다. 올해 농산물 수출 목표는 6000만달러다.
지역내총생산(GRDP)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하동군의 GRDP는 2011년 1조3390억원에서 2016년 2조2730억원으로 증가했다. 연평균 성장률은 17.4%로 도내 18개 시·군 중 가장 높고, 전국 228개 시·군 중 11위다. 인구 5만 명이 채 안 되는 농업 기반의 지방자치단체가 보여준 놀라운 변화다. 군은 높은 GRDP 성장률에 대해 “글로벌 마케팅의 결과로 농림어업 분야가 20%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한 해 화개장터를 다녀간 관광객이 220만 명을 넘는 등 해마다 하동을 찾는 전체 관광객 수는 600만 명에 이른다. 하동군은 지역 관광정책의 핵심을 ‘세계에 통할 수 있어야 한다’로 설정하고, 섬진강 뱃길 복원과 지리산 궤도열차 등이 담긴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인의 눈높이에 맞추고 있다.
하동의 미래이자 과제, 갈사·대송산단
농업 기반의 군 단위 지자체가 직면한 가장 큰 고민은 마땅한 산업 인프라가 없다는 것이다. 인구 감소 및 일자리 문제와 직결된다. 갈사산업단지와 대송산단, 두우레저단지 등이 하동의 미래이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갈사산단은 하동군 금성면 갈사·가덕리 일원 561만3000㎡ 규모로 1조5970억원을 투입하는 대형 사업이다. 대송산단은 2340억원을 들여 금남면 대송·진정리 일원 137만1000㎡ 규모로 조성 중이다. 두 사업 모두 분양대금 청구금 반환 등 법적 다툼도 있었지만 지금은 악재를 딛고 산단 조성과 투자 유치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전환점은 지난 6월 하동군이 갈사만 공사대금 청구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찾아왔다. 군은 갈사만 조선산단 시공사인 한신공영이 2014년 2월 공사 중단 이후 공사대금 431억원을 청구한 1심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채무 부담은 덜게 됐다. 이를 계기로 갈사만 조선산단과 대송산단, 두우레저단지 등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 하동지구 3개 단지의 기업 및 레저관광업체 유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윤상기 하동군수는 “갈사·대송산단과 두우레저단지 투자 유치 성공은 하동의 10대 핵심과제 가운데 하나인데 외자 도입을 위한 절차가 해결되고 투자업체가 관심을 보이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고용 인원이 많은 업종을 유치해 지역의 인구 증가와 고용 창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동=김해연 기자 ha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