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중국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부여하며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세계 경제를 혼돈에 빠뜨렸다. 국내외 많은 외교통상 전략가는 미·중 갈등을 미국과 옛 소련 간 냉전에 이은 신냉전 체제로 바라보면서 “두 나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국내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로 꼽히는 한광수 미래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은 최근 펴낸 <미중 패권전쟁은 없다>에서 이런 관점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소장은 “미국과 중국은 절대 서로 등을 돌릴 수 없다”며 “대립할수록 긴밀해지는 미·중 관계의 역설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국이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이면엔 글로벌 경제 최대 공동 수혜국으로서 시장 모든 분야에서 보이지 않는 상호 협력 관계가 굳건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2012년 출범과 함께 ‘중국몽(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20세기 들어 세계 경제·군사·외교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를 뛰어넘어 ‘중국식 천하질서’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만들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하지만 “미국과의 협력과 공존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중국 지도자는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예로 든다. 마오쩌둥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미국과 손잡고 민주 중국 건설에 나서고 싶다”고 했다. 닉슨 대통령과 만나 미·중 화해도 성사시켰다.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을 바탕으로 시장경제로의 개혁개방을 펼칠 당시 미국을 롤모델로 삼았다.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은 양국이 대립한 뒤엔 이전보다 더 강화된 미·중 관계가 구축됐다는 점이다. 끊임없는 갈등을 겪으면서도 수십여 개 대화채널을 유지했고, 2006년 이후 양국 최고위 각료들이 참여하는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통해 두 나라 사이 현안과 글로벌 이슈를 함께 다뤘다. 저자는 “미국이 중국의 급부상을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무역전쟁으로 분명히 보여주고 있지만 미·중 관계의 구조적 특성상 ‘협력이 주축, 대립은 부산물’이란 패턴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은 유일무이한 동맹국이자 엄청난 원조와 안보 우산을 제공해준 미국과 제1의 수출 및 수입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을 통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두 나라 간 무역전쟁으로 가장 큰 직격탄을 맞았다. 저자는 “양국이 충돌하는 원인은 미국이 중국 경제의 추격에 쫓기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한·중 밀착에 대한 미국 측 우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대중국 외교를 강화하면서 미국에 그 필요성을 설득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