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업계에 강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업 회계부정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감사인의 독립성을 높인 신(新)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이 시행된 것이 계기가 됐다. 신외감법 시행으로 외부감사 제도가 한층 엄격해지면서 ‘자본시장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공인회계사의 존재감이 커졌다. 감독당국과 함께 신외감법 도입 및 회계감사 개혁을 주도한 한국공인회계사(한공회)에도 조명이 집중되고 있다.
한공회는 올해를 ‘회계 개혁 원년’으로 삼고 있다. ‘회계가 바로 서야 경제가 바로 선다’는 모토를 내걸고 국내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비영리단체 등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모든 조직의 회계를 더욱 투명하게 해 한국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경제 성장에도 기여하겠다는 포부다.
회계 개혁 주도하는 한공회
한공회는 공인회계사의 등록 및 징계 관련 업무, 회계감사기준 제정, 기업 감사보고서와 회계법인의 품질관리 등에 대한 감리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1954년 세워진 한국계리사회가 모태다. 1966년 계리사법을 대체하는 공인회계사법이 제정된 이후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다. 60년 이상 국내 회계업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 성장과 함께 회계사 역할이 커졌음에도 한공회가 크게 주목받는 일은 드물었다. 회계사의 주된 업무가 회계 정보를 검증하는 일이다 보니 대규모 회계 조작 사건이 터지지 않는 한 회계업계가 화두에 오를 일이 좀처럼 없었다.
하지만 2016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대우조선이 2013~2014년 약 2조원 규모의 손실을 축소해 재무제표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회계감사의 중요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일부 회계사가 감사 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거래한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이기도 했다. 연이어 스캔들이 터지자 자본시장뿐만 아니라 정치권까지 회계감사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한공회는 이때부터 정부와 함께 신외감법 제정을 추진하며 회계 개혁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신외감법은 회계기준 위반에 대한 처벌 강화와 감사인의 독립성 보장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 법이 시행되면서 기업의 감사인 선임 기한이 크게 단축(4개월 이내→45일 이내)됐고, 금융당국이 강제로 기업 감사인을 지정할 수 있는 사유도 확대됐다. 감사 업무의 독립성을 더 확실하게 보장하기 위한 조치다.
기업 스스로 신뢰성 있는 재무제표를 작성하도록 요구하는 제도도 하나둘씩 도입되고 있다. 올해부터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인 기업은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해 ‘검토’가 아니라 ‘감사’ 의견을 받아야 한다. 내부회계관리제도는 재무제표 오류와 회계부정을 막기 위해 기업들이 구축한 내부 통제시스템이다. 한국거래소는 코스닥 기업이 2년 연속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결과 ‘비적정’ 의견을 받으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에 올리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감사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일종의 ‘감사 시간 가이드라인’인 표준감사시간도 확정됐다. 자산 200억원 미만 중소기업을 제외한 모든 외부감사 대상 기업은 올해부터 2021년까지 한공회가 정해 놓은 표준감사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한공회는 자산 규모와 업종, 상장 여부 등에 따라 외부감사 대상 기업을 11개 그룹으로 나눠 각 그룹에 최적화된 감사 시간을 부여했다.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회계 개혁의 방점을 찍을 전망이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9년마다 3년씩은 정부가 기업들의 외부감사인을 강제로 지정해 주는 제도다. 감사 대상 기업과 감사인이 오랜 기간 계약을 맺다 보면 ‘갑을 관계’가 형성돼 감사인이 객관적으로 기업의 회계를 검증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금융당국은 일단 2020년 이전에 6년 동안 감사인을 자유롭게 선임한 기업부터 감사인을 교체할 방침이다. 지난 15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신한금융지주, SK하이닉스 등의 새 감사인이 잠정 결정됐다. 이들 기업을 포함해 내년부터 매년 220개 기업의 감사인이 지정된다. 기업들의 감사인 교체가 매년 이뤄지면서 삼일회계법인이 장기간 1위를 지키던 회계감사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층 존재감 커진 회계사
회계감사가 깐깐해지면서 회계사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 제도마저 시행돼 회계사 한 명이 수행할 수 있는 감사 시간이 제한된 가운데 감사 품질은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10년간 850명이던 공인회계사 최저 선발 인원 수를 올해 1000명(실제 최종 합격자는 1009명)으로 늘렸다. 회계업계에선 줄어들고 있는 회계사 지망생 수가 다시 증가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2016년 9246명이었던 공인회계사 시험 응시자 수는 매년 감소를 거듭하며 올해 8513명까지 줄었다.
회계사들의 ‘갑질’ 우려도 나온다. 회계법인들이 감사 의견을 ‘볼모’로 잡고 기업에 부정청탁 등 부적절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표준감사시간 도입 등을 계기로 회계법인들이 감사 시간 확대를 요구해 감사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불만을 지속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한공회는 회계사들에게 더욱 엄격한 직업 윤리를 준수토록 해 이런 우려를 차단하고 있다. 한공회는 신외감법 시행 직전인 지난해 10월 감사 업무를 할 때 지켜야 할 행동 기준인 ‘공인회계사 외부감사 행동강령’을 제정했다. 감사인이 갑질이나 위법 행위를 할 경우 검찰 고발, 등록 취소 등을 통해 영구 퇴출시키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한공회는 장기적으로 공공 부문 감사 영역에서도 회계 개혁을 추진할 계획이다. 공기업을 비롯해 사학법인, 아파트 등 공공기관과 비영리단체에도 감사인 지정제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중경 한공회 회장은 “회계제도 개혁에 따르는 비용은 부담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며 “새로운 회계제도가 입법 정신에 맞게 시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