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이 같은 완화적 통화정책이 소비·투자 진작으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국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1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금과 현금으로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합친 이른바 시중 부동자금은 지난 8월 말 기준 970조209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말(955조1910억원)보다 15조180억원 늘었다. 8월 부동자금은 사상 최대를 기록한 6월 말(983조3875억원)보다는 적지만 지난해부터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기준금리와 시중금리가 역대 최저로 내려가면서 부동자금이 불어나고 있지만 소비와 투자 등 실물경제로 흘러들지 않고 있다. 돈이 얼마나 잘 도는지를 나타내는 통화승수(광의통화(M2)÷본원통화)는 올해 1, 2분기 모두 15.7을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8월에는 15.6으로 재차 하락했다. 가계와 기업이 돈을 움켜쥔 채 관망하면서 관련 실물경제 지표도 나빠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8월 설비투자 증가율은 -2.7%(전년 동월 대비·원계열 기준)를 기록하는 등 지난해 11월부터 10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시중자금이 실물경제로 흘러가지 않는 것은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기준금리 인하의 거시적 실효성 점검’ 보고서에서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 등의 불확실성이 통화정책을 무력화한 가장 큰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함준호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도 “통화정책만으로는 잠재성장률 하락 등 위기 대응에 한계가 있는 만큼 구조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