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 등에서 조제하는 한약(첩약)에 건강보험 혜택을 주기로 한 정부 계획을 두고 보건의료계 갈등이 커지고 있다. 한의사와 의사는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연일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한약 재료를 생산하는 한약산업협회, 약사회 등도 잇따라 성명을 내고 논쟁에 동참했다.
한국한약산업협회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첩약 건강보험 급여화는 전국 수십만 한약재 생산 농민, 한약재 제조업소 등의 숙원사업”이라며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은 계획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발표했다.
류경연 한약산업협회장은 이 자리에서 “급여화에 대비해 2015년부터 한약재 제조품질기준(GMP) 제도가 시행됐고 이 과정에서 업체들이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비용을 투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준을 맞추지 못한 업체 150여 곳은 폐업했다”며 “사업이 무산되면 전국 한약재 생산 농가와 함께 집단행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사들은 이날 첩약 급여 확대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건강보험 급여를 논의하기 전에 (다른 약처럼) 안전성, 유효성, 경제성에 대해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첩약 급여 확대에 반대한다는 의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발표한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에 따라 올해 안에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보험적용 필요성 등을 검증하기 위해서다. 당초 이달 열리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시범사업 안건을 올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의사들이 제동을 걸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 대책인 문재인 케어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한의사협회가 문재인 케어를 지지하는 대신 첩약 급여화를 반대급부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 7일 최혁용 한의사협회장과 이진석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의사협회는 11일 이들의 유착관계가 의심된다며 국민감사도 청구했다.
한의사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력 반발했다. 첩약급여는 한의학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해달라는 국민의 요구에 따른 것이지 정치적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의사들이 첩약 급여를 정쟁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사와 한의사들은 의료기기 사용, 추나 건강보험 급여 확대 등을 두고도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활용해 국민들이 받는 혜택을 빠른 속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확대하려다보니 진통이 커지고 있다”며 “국민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갈등을 풀기 위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