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ㅣ'82년생 김지영' 원작보다 진보한 영화

입력 2019-10-15 08:28


시작부터 소란스러웠지만 빈수레는 아니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담담하고 묵직하게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엄마, 동료, 친구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데 성공했다.

'82년생 김지영'은 2년 전 발간된 조남주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자친구가 읽는다"고 하면 "헤어지라"는 조언을 받고, 레드벨벳 아이린, 배우 서지혜 등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악성 댓글에 시달렸던 그 책이 맞다. '82년생 김지영'의 영화화 소식이 알려지고, 정유미와 공유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배우들에게도 악플 공격이 이어졌고, 촬영도 시작하기 전에 0점 별점 테러를 당해야 했다.

많은 비난과 우려, 기대 속에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견고한 만듦새를 완성했다.

기본 설정과 메시지는 동일하다. 82년 4월 1일에 태어난 김지영을 내세워 여성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평등을 전했다. 오빠, 혹은 남동생 교육을 위해 어린 나이부터 경제 활동으로 내몰렸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에 지금의 30대 여성들은 남녀 차별 없는 교육을 받았다.

그럼에도 집 안에서도, 회사에서도 여전히 남자들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할머니는 남동생 밥을 먼저 챙겼고, 똑같이 일해도 남자 동기보다 승진에서 밀렸다. 성희롱 발언에 불쾌함을 느끼면 "예민하다", "세다"는 뒷담화의 주인공이 돼야 했다.

그런 여성들이 느꼈을 울분을 동요없이 담아낸 원작의 분위기를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오롯이 전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원작에서 남성들이 불편함을 느꼈을 법한 다소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화법대신 직접적인 설명이 아닌 상황을 제시하며 공감대를 높였다.

또한 화장실 몰카, 출산 여성의 복귀 문제 등에 대해서도 원작보다 섬세한 방식으로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이를 통해 내놓은 결말 역시 원작과는 다른 감동을 안긴다.

정유미, 공유는 물론 김미경, 공민정, 김성철, 이얼 등 김지영의 가족으로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좋아한다면서 공포심을 조성하는 남학생에게 쫓기는 김지영을 돕는 아가씨로 잠깐 등장한 염혜란까지 영화의 어느 한곳도 허투루 흘러보내지 않는 배우들의 열연이 신파 없이도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 올린다.

연출자인 김도영 감독의 감각 역시 탁월하다. 첫 장편 데뷔작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마지막까지 흔들림없이 극을 이끌어낸다.

특히 원작의 액자식 구성과 다르게 현실과 과거가 교차하는 구성으로 바꾸면서 전개 방식이 더 어려워졌지만, 김도영 감독은 매끄럽게 장면과 장면을 연결했다. 미국을 가겠다던 어린이 김지영부터 꿈 많던 신입사원, 아이를 고민하던 새댁까지 김지영의 과거를 꼼꼼하게 그려내면서도 극이 늘어지지 않도록 완급 조절을 해냈다.

한쪽에선 "여자들의 피해망상을 자극한다"고 욕하고, 다른 쪽에서는 "너무 예쁘고 잘생긴 정유미, 공유가 캐스팅 돼 '82년생 김지영'의 메시지를 현실감있게 전하지 못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은 작품이라는데 이견이 없을 듯 하다.

오는 23일 개봉. 118분. 12세 관람가.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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