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일간 국론 두 동강…청년층 좌절·세대별 갈등만 '심화'

입력 2019-10-14 17:35
수정 2019-10-15 03:27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조국 법무부 장관을 후보로 지명한 이후 66일간 한국 사회는 계층, 세대 구분 없이 ‘조국 사퇴’와 ‘조국 수호’로 양분됐다. 좌·우 정파성을 넘어 시민들은 한국 사회의 공정과 정의가 무너졌다는 실망감에 휴일마다 광장에 나와 대립각을 세웠다. 조 장관이 14일 물러나면서 “국민들께 너무도 죄송스러웠다. 특히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입시부정 의혹·검찰개혁 ‘분노·갈등’

먼저 대학생들이 조 장관 딸과 관련된 입시부정 의혹에 촛불을 들었다.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은 8월 23일부터 입시부정 의혹을 규명하라는 네 차례의 집회를 열었다. 조 장관의 딸이 고등학생 시절 부적절하게 논문 1저자로 등재된 사실이 드러나고 이를 이용해 고려대에 입학했다는 의혹이었다. 조 장관 딸이 서울대 대학원에서 신청하지도 않은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청년층은 또다시 분노했다.

교수 사회도 조 장관을 두고 ‘시국선언’ 전쟁을 벌였다. 조국 사퇴를 요구하는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이 주도한 시국선언에 서명한 교수가 4366명이라고 발표하자 조국 지지를 표명하는 ‘시급한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국내외 교수·연구자 일동’은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시국선언 교수 4090명의 명단을 공개하며 맞불을 놨다.

문 대통령이 조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양분된 세력이 본격적으로 광장으로 나왔다. 지난달부터 토요일과 공휴일이면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 일대는 조국 반대·지지 집회에 몰려드는 수십만 명의 인파로 들썩거렸다. 진보 시민단체들도 조 장관의 불법 사모펀드 투자를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졌다. 참여연대 핵심 간부였던 김경율 전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참여연대를 탈퇴한 뒤 “조 장관의 의혹과 관련해 눈 감고 넘어가는 참여연대는 존립 근거가 없다”고 참여연대를 비판했다. 진보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 역시 진상 규명과 엄정한 처벌을 요구하며 조 장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장관 사퇴했지만 ‘후유증’ 커

조 장관이 사퇴했지만 한국 사회의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는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조 장관 사퇴를 두고도 시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어서다. 서울대 학생인 김모씨(22)는 “애초 조 장관은 장관으로 임명되는 게 아니었다”며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장관직에서 물러난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에선 이날 조 장관의 교수 복귀를 막아야 한다는 대자보가 붙었다.

반면 반포동에 사는 윤모씨(58)는 “검찰의 먼지털기식 수사에 또 한 명이 희생당한 거 아니냐”며 “지난 주말 서초동 집회에 나갔는데 결론이 이렇게 나니 참담한 심정”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정 농단 이후 하나로 뭉쳐진 시민 참여의 전통이 조 장관 임명을 계기로 두 쪽이 났다”며 “한국 사회의 중요한 자산이 사라진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국 사회의 공정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문재인 정부가 조 장관 임명 과정에서 확인된 불공정, 사회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한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많은 청년이 조 장관 임명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믿었던 촛불 정부조차 ‘게임의 룰’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이번 사태로 ‘586’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세대도 ‘기득권’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게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 장관 전격 사퇴를 한국 사회의 중간점검 계기로 삼지 못한다면 사회 갈등과 후유증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순신/노유정/배태웅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