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데뷔 동시에 '빌보드 200' 정상 등극…슈퍼엠, K팝 신화 잇는다

입력 2019-10-14 18:04
수정 2019-10-15 03:34
SM엔터테인먼트가 세계 무대를 겨냥해 야심차게 결성한 슈퍼엠(SuperM)이 미국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랐다.


미국 빌보드는 14일 예고 기사를 통해 슈퍼엠의 첫 미니앨범 ‘슈퍼엠’이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가수가 빌보드 정상에 오른 것은 방탄소년단(BTS)이 세 차례 1위를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닐슨뮤직에 따르면 이 앨범은 지난 4일 발매된 뒤 10일까지 16만8000점을 얻었다. 전통적인 앨범 판매량이 16만4000장이고, 나머지는 디지털음원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횟수를 앨범 판매량으로 환산한 수치다. 빌보드는 음원 10곡을 내려받거나 1500곡을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로 받으면 전통적인 앨범 한 장을 산 것으로 간주한다. 슈퍼엠 멤버들은 “‘빌보드 200’ 1위를 하게 돼 정말 기쁘고 꿈만 같다”며 “새로운 도전을 통해 뿌듯한 결과를 얻어 행복하고, 앞으로 ‘슈퍼 시너지’를 보여드리도록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K팝 강점 극대화한 ‘기획’의 승리

슈퍼엠은 샤이니의 태민, 엑소의 백현과 카이, NCT127의 태용과 마크, 중국 웨이션브이의 루카스와 텐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멤버 중 퍼포먼스에 강점이 있는 일곱 명이 모인 연합팀이다. 일명 ‘K팝 어벤저스’로 불리며 데뷔 전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이수만 SM 총괄프로듀서가 기획해 미국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레이블 캐피톨뮤직(CMG)과 협업하고 있다. 이 프로듀서는 “새로운 도전에 함께해준 멤버들이 대견하다”며 “응원을 보내준 한국 팬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팬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스티브 바넷 CMG 회장도 “슈퍼엠은 오늘 새로운 역사를 썼다”며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 더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슈퍼엠의 첫 앨범에는 타이틀곡 ‘쟈핑(Jopping)’을 비롯해 ‘아이 캔트 스탠드 더 레인(I Can’t Stand The Rain)’, ‘투 패스트(2 Fast)’, ‘슈퍼 카(Super Car), ‘노 매너스(No Manners)’ 등 다섯 곡이 담겼다. 이번 성적이 반영된 빌보드 차트는 15일께 공개된다.

슈퍼엠의 이번 쾌거로 글로벌 팝시장에서 K팝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K팝 가수 중 방탄소년단이 독식해온 빌보드 차트를 슈퍼엠이 경쟁체제로 바꾸면서 K팝에 대한 세계 팬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강문 대중음악 평론가는 “슈퍼엠이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것은 철저한 기획의 산물”이라며 “슈퍼엠이란 프로젝트성 기획이 매우 독창적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에 필적할 만한 초대형 콘텐츠가 없다면 슈퍼엠과 같이 SM이 배출해온 스타들의 연합체로 새로운 열풍을 꾀해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파격적이었다는 것이다. 강 평론가는 “K팝 산업은 주로 팀을 최소 단위로 해 관련 일정과 활동이 이뤄지기 때문에 연합체 그룹의 출현은 애초부터 쉽지 않았다”며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런 팀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사회 지향하는 ‘다양성’ 반영

이질적이고 이례적인 프로젝트였던 만큼 대내외에서 불러일으킨 마케팅 효과가 컸다. 빌보드가 지난달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한 ‘슈퍼엠은 왜 ‘K팝 어벤저스’라 불리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슈퍼엠은 SM에서 가장 성공했고, 여전히 활동 중인 그룹의 일곱 멤버로 이뤄진 보이 밴드로, 최근 K팝에서 가장 인상적인 라인업을 보유했다”고 소개한 것도 슈퍼엠의 ‘특별함’을 바탕으로 했다. 당시 빌보드는 “슈퍼엠은 블록버스터급 라인업으로, 미국 시장 내 K팝의 주류를 선도하고 싶어하는 SM의 시도를 보여준다”고 SM의 숨은 의중을 분석했다. 방탄소년단 열풍에 대한 SM의 반격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슈퍼엠의 음악은 K팝의 강점을 극대화했다. 타이틀곡 ‘쟈핑’은 SM만의 뮤직 퍼포먼스인 SMP(SM Music Performanc)라는 종합예술 콘텐츠를 보여주는 강렬한 사운드의 곡이다. 웅장한 호른 사운드로 도입부를 여는 일렉트릭 팝 장르로 미래적인 콘셉트, 역동적인 안무가 특징이다. 다인조 그룹이 약한 미국에선 볼 수 없던 스타일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쟈핑’은 K팝의 특징을 충실하게 담아내면서 글로벌한 요소를 한국 식으로 해석해 잘 구현했다”며 “K팝이 기획으로 접근해도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美 시장 뿌리내리려면 대중성 확보해야

슈퍼엠의 성공적인 데뷔는 미국 주류 레이블과의 협업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CMG의 지원은 예상대로 체계적이고, 효과적이었다. 샘 스미스, 트로이 시반, 케이티 페리 등 내로라하는 팝스타들을 거느린 CMG는 미국식 방송 환경과 음반산업의 메커니즘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슈퍼엠의 흥행을 준비했다.

지난 5일 미국 할리우드에 있는 대형 빌딩 ‘캐피톨 레코즈 타워’에서 야외 쇼케이스를 열어 이목을 집중시켰고, 9일에는 미국 NBC의 간판 프로그램인 ‘엘런 드제너러스쇼’에 출연시키는 등 중요 미디어를 활용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며 대중의 관심을 높여왔다.

하지만 슈퍼엠이 미국 시장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대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음악사 관계자는 “대대적인 물량을 쏟아부어 이룬 성과여서 단기간에 그칠 수도 있다”며 “앞으로 미국에 고정 팬층을 확대해야 장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