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은 자신의 가수 인생 30년을 돌아보며 '이방인'처럼 살아왔다고 했다. 여전히 장시간의 공연도 거뜬히 해내는 그는 꾸준한 젊은 감각으로 음악의 길을 나아가겠다는 진심을 내비쳤다.
이승환은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구름아래 소극장에서 정규 12집 '폴 투 플라이 후(FALL TO FLY 後)' 발매 기념 음감회를 개최했다.
'폴 투 플라이 후'는 2014년 11집 '폴 투 플라이 전'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열두 번째 정규 앨범이다. 타이틀곡은 '나는 다 너야'로 최근 트렌드인 뉴트로(New+Retro, Newtro) 경향의 곡이다. 70년대 모타운 사운드에서 착안해 빈티지 건반 악기들과 빈티지 기타 앰프 등이 이승환표 리얼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밝고 경쾌한 재즈풍의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이승환은 모타운 사운드를 활용한 것에 대해 "어렸을 때 들었던 음악이 평생 가지 않냐. 계속 그 영향력이 남아 있다가 최근에 레트로, 뉴트로 붐이 있어서 그런 사운드에 접근해보자고 했다. 실제로 빈티지 악기를 미국에서 가져와 녹음도 세 분의 드러머가 친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골랐다. 건반도 같은 식이었다. 늘 그렇게 작업하기는 하지만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이승환 곡들에서는 그만의 강인한 힘이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이번 타이틀곡은 다소 부드러운 느낌이 감돈다. 이에 대해 이승환은 "사랑에 소홀해지면서 연인의 부재를 느낄 때는 오히려 죄책감 같은 것들이 밀려 온다. '가끔 잊고 사는 연인의 소중함을 다시금 떠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가을, 겨울에 훈훈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예전에 내 팬들이 이승환은 불행을 숙주 삼아 좋은 음악을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행복했던 시절에 만든 8집 앨범을 졸작이라고 하고, 그 이후에 아픔을 겪고 나서 만든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를 걸작이라고 한다"면서 "시간과 상황에 따라 앨범이 달라진다. '나는 다 너야'는 예전처럼 절박하고 간절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소소한 행복을 그리는 노래라 조금 가볍게 들으실 수 있다. 예전에는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음악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냥 들으셔도 흐뭇하고 좋은 음악이 아닐까 싶다"고 자신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이틀곡으로 선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이승환은 "알려지는 게 필요하다 생각했다. 나를 매니아층이 많은 가수로만 알고 있다. 특히 20대 분들은 페스티벌에서 강제 관람할 때만 나를 알게 되더라"며 "그 분들이 좀 알았으면 했다. 나이가 든 가수들에게 호의가 없는 가요계이긴 하지만 트렌드를 놓지 않고, 젊은 음악인들 사이에서 젊은 음악을 하는 현역 음악인이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가수들의 생명력이 연장될 수 있는 선례가 되고, 후배들에게는 노쇠한 선배들의 음악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고 영향력을 끼치는 선배 음악이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더 최신 트렌드 음악을 들려드려야 하지 않을까 했다"고 전했다.
이승환은 "음악인으로서의 젊은 감각은 미덕"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그는 "스스로 젊은 감각을 놓지 않고 지내는 것이야말로 계속되는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없다. 원래 록과 패션은 떨어질 수 없다고 본다. 많은 음악하는 선배들이 말해주는 게 음악에 대해 고정된 시선을 타파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내 음악이 또래 가수들보다 젊게 들릴 수 있지만 오랜 수련과 수양을 스스로 절제하고 인내하는 삶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은 이승환에게 더더욱 특별하다. 1989년 1집 'B.C 603'으로 가요계에 발을 들인 그가 데뷔 30주년을 맞아 발매하는 신보이기 때문. 이승환은 지난 30년 간의 가수 생활을 돌아보며 "아무도 하지 않은 단 한 가지를 했던 30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철저하게 가요계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실제로 제작자나 PD도 모르고 공연 위주로 나의 길을 갔다"고 밝혔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애원' 뮤직비디오가 귀신 조작 논란에 휘말렸을 때라고. 이승환은 "1997년도에 뮤직비디오 귀신을 조작했다고 해서 이후 1999년도에 은퇴를 암시하는 '당부'라는 곡을 썼다. 그때는 세상 풍파를 이기는 것에 마모돼 있지 않아 굉장히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최근에는 성향을 드러내면서 국민의 절반을 팬으로서 잃었다고 말씀들 하시는데 내가 쓰는 곡들은 내 생각이나 성향을 실제로 녹여내고 있다"며 "내 성향을 밝히는 것에, 내 음악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을 설득할 자신은 없다. 가끔은 '내 음악은 인정하시는 분들만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주제 넘게 해 본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과거의 이승환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할 것 같냐는 물음에 "처음 음악할 당시에는 음악을 위한 음악을 하자고 순수하게 생각했다. 동화적인 감상일지 모른다. 훗날 중간 쯤에 살짝 돈에 집착할 때도 있었다"면서 "그 고비들을 잘 넘기고 결국에는 잘 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이승환은 "최근 음악의 가치가 점점 더 돈으로 매겨지고, 그런 느낌도 굉장히 많다"면서 "음악이 가진 힘이 굉장히 크지 않냐. 나는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사로 잡을 수 있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을 향해 "전혀 일면식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는 마법 같은 음악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음악인들은 내면 깊숙히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돈과 권력의 편에 서면 안 되고, 사람의 편에 섰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승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하나는 공연이다. 그는 지난 6월에 열린 '라스트 빠데이-괴물' 콘서트에서 9시간 30분 동안 공연해 국내 최장 공연 시간이라는 역대급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그는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브랜드 공연을 하고 있어서 다양한 곡들을 다양하게 편곡, 연출해 종합선물세트처럼 보여드리자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공연을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라면서 "최장 시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가수가 관리를 한다는 것이라 성취감도 크다. 이번 9시간 30분을 했을 때는 기네스 측에 와 달라고 연락을 했다. 인도에서 일주일을 한 사람이 있어서 올 수 없다고 하더라. 그 좋은 기회를 놓쳤다"라며 웃었다.
이승환은 "'공연의 신'이라는 타이틀이 처음에는 민망했는데 지금은 보편적으로 '님'이라는 걸 쓰고 있기 때문에 그걸 누리는 게 호사지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우리는 쇼를 바탕으로 하는 재미있는 공연을 추구한다. 거기에 탄탄한 음악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특히 사운드에 관해서는 양보할 수 없다. 그런 게 차별화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소신을 밝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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