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총선서 집권당 승리…시민들은 '법치' 대신 '포퓰리즘' 택했다

입력 2019-10-14 16:45
수정 2019-10-14 17:02

폴란드에서 13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 출구조사 결과 우파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성향의 집권당인 ‘법과 정의당(PiS)’의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PiS 정부가 사법부 장악을 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여러 사법개혁이 폴란드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시민들은 ‘법치보단 포퓰리즘’을 외치며 PiS를 지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PiS의 득표율은 43.6%로 하원 전체 460석 중 239석을 차지해 과반의 의석을 확보했다. 2015년 집권한 PiS는 반(反)난민, 복지 개혁, 보수주의, 경제 부흥을 위한 국가 역할 강화 등을 내세운 우파 민족주의 성향 정당이다. 청년일자리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 모든 가정에 육아수당 지급, 폴란드 우선의 자주외교 공약 등으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외신들은 앞서 이번 총선을 앞두고 PiS가 재집권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었다. PiS 정부가 그간 추진 중이던 여러 사법개혁이 폴란드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PiS는 지난 2015년 집권 직후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강행처리해 논란이 됐다. 유럽연합(EU)은 당시 “폴란드 정부가 최근 사법권과 관련해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제한 조치는 EU의 민주주의 기준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폴란드 정부는 이후에도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한 여러 개혁안을 내놨고 최근에는 자국 언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도 PiS가 재집권에 성공하게 된 것은 PiS 정부가 그간 추진하고 있던 여러 포퓰리즘 정책이 먹혀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PiS는 집권 초기부터 아동수당 지급과 저소득층에 대한 세금 감면, 연금과 최저임금 확대 등 폭넓은 복지 정책을 펼쳐왔다. PiS가 2016년 내놓은 ‘패밀리500+’라는 가족수당(아동수당) 정책이 대표적이다. 18세 이하인 자녀(둘째 자녀부터) 1명 당 매달 약 16만원을 지급하는데, 부모의 노동 여부를 심사하지 않아 매우 관대한 복지 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폴란드의 한 유권자는 FT와 인터뷰에서 “지난 4년 동안 상황이 나아지고 있었다면 지금 집권당에 표를 던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내 생각엔 지금 팀(PiS 정부)이 다른 후보들보다 낫다”고 말했다.

PiS는 이번 선거에서도 폴란드의 낙후화된 병원 인프라 현대화와 교육·환경·교통 부문에서의 투자 확대, 취학연령 자녀를 둔 가정에 대한 복지비 지원 확대 등을 내세워 유권자의 표심을 공략했다. 또 폴란드 카톨릭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수십 개 도시를 성 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성 소수자 없는 도시’로 만들고 낙태를 제한하는 방안 등을 내세웠다.

다만 PiS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 언제까지 효과를 나타낼지 알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분배에만 초점을 둔 정책으로는 충분한 경제 성장을 이끌어낼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2000년대 초반 7%를 구가했던 폴란드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현재 연평균 4%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폴란드의 경제성장률이 3.8%를 기록하고 내년부터는 2%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