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에티오피아의 기적"

입력 2019-10-13 17:30
수정 2019-10-15 11:38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운 참전국이다. 지금도 참전용사 153명이 생존해 있다. 적도 근처에 있는 내륙국가인데도 고원지대여서 별로 덥지 않다. 로마 제국에 앞서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한 나라답게 인구 1억1000만 명의 절반이 기독교인이다. 주변의 이슬람 국가들에 맞서 십자군 전쟁에도 참여했다.

역사가 3000년에 이르는 이 나라는 한때 융성했으나 1974년 쿠데타 이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고난의 길을 걸었다. 독재와 부정부패, 종족 갈등으로 유혈 분쟁에 시달렸다. 접경국인 에리트리아의 분리독립 세력과 싸우느라 2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국토는 황폐해졌고 1인당 국민소득은 934달러(2018년)에 불과하다.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1년 전부터다. 지난해 집권한 ‘아프리카 최연소 총리’ 아비 아머드 알리(43)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기치로 국가 체질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는 정치범과 야당 지도자들을 석방하고 인터넷과 방송 차단조치를 풀었다. 국영기업들의 민영화까지 과감히 추진했다.

국민 통합과 경제 살리기 정책에 이어 에리트리아와의 분쟁도 끝냈다. 그 결과 내륙국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해양 무역의 길을 열었다. 국경분쟁을 벌이던 소말리아와의 관계도 개선했다.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그의 실용주의 정책에 국민들은 환호했다.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30세 이하 청년들은 “에티오피아의 기적”이라며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가 올해 100번째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어린 시절 물과 전기 부족으로 고통 받으며 자랐던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경제통이다. 올해 8월 방한했을 때는 “한국이 우리의 롤모델”이라며 “에티오피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와 한국을 연결하는 대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6·25 때 6037명의 전투병이 참전해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다쳤던 ‘아프리카 혈맹’의 변신 노력에 이제는 우리가 화답할 때다. 에티오피아 거리의 자동차 중 한국 차 비중은 20%에 이른다. 한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인상도 좋다. 마침 방위사업청은 방산기업 협력을 늘리기로 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전력·지하수 등 농촌개발사업 지원에 나섰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