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자 경험이 있는 국내 기업 중 77%는 “한국보다 외국의 투자환경이 좋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의 79%는 “국내로 돌아와 투자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8월 23일부터 9월 3일까지 해외 사업과 관련해 수은에서 대출을 받은 기업 216곳(대기업 47곳, 중견기업 114곳, 중소기업 55곳)을 대상으로 국내외 투자환경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한국경제신문은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이 자료를 단독 입수했다.
‘국내와 국외 중 투자환경이 좋은 곳은 어디인가’란 질문에 ‘국외’라고 답변한 기업이 166곳으로 전체의 76.9%를 차지했다. ‘국내’라는 답변은 22.7%(49곳)였다. ‘국내로 돌아와 투자하는 이른바 유턴기업이 될 의향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없다’는 답변이 78.7%(170곳)였다. ‘있다’는 대답은 18.1%(39곳)로 ‘없다’는 답변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해외에 투자 또는 진출한 이유’로는 65.3%(141곳)가 ‘해외 매출처 다변화’를 꼽았다. ‘국내보다 저렴한 임금’이란 답변이 30.1%(65곳)로 2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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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유턴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은
세제혜택·규제완화·노동 유연화"
한국수출입은행의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80% 가까이가 ‘국내보다 해외의 투자환경이 좋다’ ‘국내로 돌아와 투자할 의향이 없다’고 한 것은 최근 국내의 투자환경이 얼마나 척박한지를 보여준다. 현 정부 출범 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 52시간 근로제 등으로 노동비용이 증가한 데다 법인세율까지 오르며 기업들의 ‘엑소더스’가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수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에서 빠져나간 해외직접투자액은 1년 전보다 13.3% 증가한 150억1000만달러였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80년 4분기 이후 최대다. 해외직접투자액은 2017년 4분기와 작년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였지만 작년 2분기 플러스 전환한 뒤 매 분기 20~30% 증가하고 있다.
반면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직접투자(FDI)는 급감하고 있다. 올해 2분기 FDI는 전년 동기 대비 38.1% 감소한 67억달러(신고 기준)였다. 도착 기준으로는 29억55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8.5% 급감했다.
수은은 2013년 12월부터 해외에서 국내로 돌아오는 ‘유턴 기업’에 시설자금으로 쓸 수 있는 돈을 빌려주고 있다. 금리를 최대 연 0.3%포인트 깎아주지만 올해 9월 말까지 이 대출을 이용한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수은이 해외투자 경험이 있는 기업 216곳을 대상으로 ‘기업들이 국내로 돌아와 투자하기 위해선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란 질문(복수응답 허용)을 하자 ‘세제 혜택’이란 답변이 48.7%로 가장 많았다. 한국은 상속·증여세 실질 최고세율이 65%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데다 법인세 최고세율도 작년부터 22%에서 25%로 올랐다.
세제 혜택 다음으로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는 답변(27.0%)이 뒤를 이었다. 수은의 중소·중견기업 금융 지원 프로그램인 ‘히든챔피언’ 대상 기업은 2014년 323곳에서 올해 9월 현재 234곳으로 감소했다. 히든챔피언으로 새롭게 선정된 회사가 2017년에는 한 곳도 없었고 작년에는 일곱 곳, 올해도 네 곳에 불과했다.
‘규제 완화’(22.6%), ‘노동시장 유연화’(10.4%) 등이 필요하다는 답변도 많았다.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각종 규제로 국내의 투자환경이 악화해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로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게 설문조사를 통해 밝혀졌다”며 “법인세 인하, 규제 철폐 등 기업 친화적 정책으로 전환해 기업들의 유턴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