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끝내 ILO협약 비준까지…"취지 좋으니 따라오라"는 정부

입력 2019-10-09 17:27
수정 2019-10-10 00:18
최저임금 1만원,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재인 정부의 3대 노동정책이다. 최저임금은 지난 2년 동안 29.1% 올랐다. 지난해 7월부터는 법 개정 이후 4개월 만에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한꺼번에 16시간 줄인 주 52시간 근로(300인 이상) 제도가 시행됐다. 여기에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노조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3종 세트’가 완결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 정부는 집권 첫해 최저임금(2018년도 적용)을 한 번에 16.4% 올리면서 저임금근로자의 소득을 끌어올려 소비와 생산을 선순환시키는 소득주도성장을 하겠다고 했다.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면서는 세계 최장 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근로시간을 줄여 ‘저녁이 있는 삶’을 선사하겠다고 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안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국격에 맞춰 이 정도의 노동기본권은 보장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정책 추진 배경이다. 취지만 놓고 보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정책들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경제에 큰 충격을 몰고 왔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렸으니 직장에 다니고 있는 저소득층의 소득은 당연히 높아졌다. 하지만 고용이 불안한 아르바이트생의 수입은 줄었고, 고용시장 울타리 밖 취약계층의 노동시장 진입은 더 어려워졌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 데다 이에 연동하는 주휴수당(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하루치 임금) 부담까지 커진 사업주들이 채용을 줄이고 ‘알바 쪼개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은 크게 올렸지만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등은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다 보니 기본급은 적지만 상여금을 포함하면 이미 고임금을 받고 있는 근로자들의 주머니가 늘어나기도 했다. 이런 부작용을 막겠다며 부랴부랴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를 최저임금에 산입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직장인의 임금만 더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준비되지 않은 땜질식 정책의 연속이었다. 그런 와중에 정작 정책 대상이던 최저임금 선상의 근로자들은 쪼개기 알바로 내몰리거나 일터를 아예 떠나는 사례가 속출했다.

주 52시간 근로제도 허둥대긴 마찬가지였다. 충분한 준비 없이 시행하면서 ‘계도기간’을 잇따라 설정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결과적으로 비교적 고임금을 받고 대기업에 다니는 ‘광화문 직장인’만 여가시간이 늘었고 장시간 근로에 허덕이던 근로자들은 줄어든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 투잡 전선에 뛰어들었다. “저녁 시간은 생겼는데 저녁 먹을 돈이 없다”는 웃지 못할 불만도 터져나왔다.

ILO 핵심협약 비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것이라는 경영계 우려는 차치하더라도 전체 근로자의 90%에 달하는 무노조 근로자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현재 노조에 가입해 있는 10%, 즉 대기업과 교사, 공무원 등의 권리만 확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취지가 좋다고 결과도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최저임금도 주 52시간도, ILO 핵심협약 비준도 그렇다. 그 취지를 살리려면 좌우를 살펴 천천히 가야 한다. 이런 경고에 귀를 닫고 ‘군말 말고 따라오라’는 식으로 밀어붙이고 뒤늦게 땜질 처방을 일삼는 정치와 행정이 안타깝다.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