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헤지펀드 운용사 및 대형 투자은행(IB)들이 한국 바이오주 하락에 ‘베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개인투자자의 ‘사자’에 힘입어 바이오주 급등세가 나타나고 있어 이들이 대규모 손실을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바이오주 겨냥한 공매도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급등한 주요 바이오주들이 코스닥시장 공매도 잔액 순위 상위권을 휩쓸었다. 에이치엘비는 공매도 잔액이 4955억원(지난 4일 기준)으로 이 종목 시가총액의 14.7%를 차지했다. 코스닥시장 전체 종목 가운데 시총 대비 공매도 잔액 비중이 가장 컸다.
신라젠 853억원(11.0%), 헬릭스미스 1423억원(9.3%), 메지온 1049억원(8.7%) 등이 에이치엘비의 뒤를 이었다. 에이치엘비생명과학도 484억원(8.3%)으로 6위를 차지했다. 바이오주는 하반기 들어 공매도 잔액이 급증하는 추세다. 에이치엘비는 지난 7월 말 1004억원→8월 말 2329억원→9월 말 3649억원으로 불어났다. 코스닥 제약업종의 공매도 잔액은 8월 12일 1884억원에서 지난 4일 2736억원으로 급증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매도하는 것을 말한다. 주가가 하락하면 해당 주식을 싼값에 사 빌린 측에 돌려주면 되기 때문에 떨어진 만큼의 차액을 벌 수 있다. 상장 주식 수의 0.5% 이상을 대량 공매도한 매매 주체 가운데엔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IB가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이치엘비와 신라젠은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크레디트스위스 등 5개 증권사가 대량 공매도했다. 헬릭스미스는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크레디트스위스, 그리고 메지온에 대해서는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씨티그룹이 하락에 베팅했다.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한국형 헤지펀드 운용사 중 상당수도 바이오주에 대한 공매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운용 업계 관계자는 “최근 수년간 높은 수익을 내 투자자 자금을 쓸어모은 유명 헤지펀드 운용사 중 상당수가 에이치엘비에 대해 쇼트(매도) 포지션을 구축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개미’ 순매수에 급등
하지만 최근 시총 상위 바이오주는 ‘선수’들의 예측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8일 현재 코스닥 시총 20위 이내 주요 제약·바이오주 7개 종목의 주가는 8월 말 대비 평균 32.32% 상승했다. 종목별로 보면 에이치엘비가 157.99% 뛰어올랐고 신라젠(55.71%), 셀트리온헬스케어(24.86%), 셀트리온제약(22.51%) 순으로 상승폭이 컸다.
이들의 상승세는 개인이 이끌고 있다. 이 기간 코스닥시장에서 개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헬릭스미스로, 순매수액이 1205억원에 달했다. 이에 비해 외국인은 928억원어치를 순매도했고 기관투자가도 26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신라젠도 개인은 364억원어치를 순매수했으나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289억원, 79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바이오주 공매도 비중을 높인 몇몇 헤지펀드 운용사들이 지금까지는 가까스로 버텼지만, 급등세가 한동안 더 이어지면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큰손 투자자들이 개미와의 경쟁에서 패하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