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혁 주미대사 지명자(사진)의 부임이 늦어지면서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지 62일째지만 미국의 동의를 뜻하는 ‘아그레망’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다. 외교가에서는 아그레망이 두 달 넘게 지연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 정국이라는 돌발 변수가 등장한 요인도 있지만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시선이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외교가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아그레망이 늦어지는 이유는 행정 절차상 문제라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통상적으로 아그레망을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60일 안팎이기 때문에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주미대사들이 아그레망을 받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적으로 30일 안팎이었다. 최근 10년 사이 아그레망 대기가 가장 길었던 전임자는 안호영 전 주미대사로 50일이었다. 현재 주미대사를 맡고 있는 조윤제 대사는 43일 만에 나왔다. 한·미 관계가 좋지 않았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아그레망을 받는 데 가장 오래 걸린 건 36일(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었다.
아직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 신분인 이 지명자는 아그레망이 늦어지면서 ‘예상치 못한’ 국정감사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7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주미대사관 관련 질문을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외교가에선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미국 정치권에 트럼프 탄핵 정국이 만들어지면서 아그레망 이슈가 후순위로 밀린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 환멸을 느낀 적잖은 공무원이 미국 국무부에서 대거 빠져나가면서 행정 공백이 생긴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선 미국이 우리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박 교수는 “한·미 동맹이 튼튼했다면 다른 어떤 일을 제쳐두고서라도 아그레망을 일찍 내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지명자가 몇 달 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표리부동하다”고 비판한 것도 미국 측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외교 무대에선 해당 국가를 비판하거나 위해를 가한 전례가 있거나 향후 그럴 것이라고 예측되는 인물은 기피 인물이라는 뜻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목돼 아그레망을 거부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