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규모 재건축단지인 서울 둔촌주공아파트의 일반분양이 결국 내년으로 넘어갔다. 어느 정도 수준의 분양가를 수용해야 하는지 조합원 총의가 모아지지 않은 데다 행정 절차도 여럿 남아서다. 예정보다 크게 미뤄지는 일정 탓에 예비 청약자들의 기다림도 길어지고 있다.
◆물 건너간 연내 분양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의 일반분양 시기가 내년 2월로 넘어갈 전망이다. 사전에 조합원 총회와 관리처분계획 변경, 조합원 동·호수 추첨 등을 진행하려면 적어도 서너 달의 시간이 필요한 까닭이다. 공원면적 확대를 담은 정비계획 변경 또한 올 연말께나 인가가 가능할 전망이다. 조합은 이 같은 행정 절차 일정을 담은 안내문을 최근 조합원들에게 배포했다.
조합은 정부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발표로 한두 달 새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주택법 시행령’ 개정이 진행되면서 상한제 사정권에 들었지만 이달 초 6개월 유예 방침이 발표돼 기사회생했다. 철거 공사를 거의 마무리한 상태여서 상한제 ‘데드라인’인 내년 4월 전까진 일반분양이 가능한 까닭이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다. 상한제를 피했더라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서를 발급받으려면 주변 단지 분양가나 시세의 일정 수준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합은 애초 3.3㎡당 평균 3500만원대에 분양하려는 계획을 세웠다.전용면적 84㎡(공급 114㎡)로 환산하면 12억원 안팎이란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 분양가는 이보다 크게 내려갈 전망이다. HUG 기준에 맞출 경우 둔촌주공의 일반분양가는 3.3㎡당 2500만~2600만원 선이 된다. 전용 84㎡ 가격은 8억5000만~8억9000만원대로 낮아진다. 종전 계획과 비교하면 가구당 2억~3억원을 조합이 손해보는 셈이다.
관건은 다음달로 예정된 관리처분계획 변경 총회다. 관리처분계획은 재건축사업의 성적표다. 대략적인 정산을 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분담금 증감 여부가 여기서 결정된다. 일반분양 예상 가격이 당초 계획보다 낮아진다면 조합원들의 분담금은 증가한다. 조합원들이 총회에서 동의할지 미지수다. 부결되면 사후 절차 진행도 줄줄이 막혀 내년 2월 전에 일반분양이 어렵다. 최악의 경우 상한제 유예 시한인 4월까지 입주자모집공고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조합 관계자는 “앞으로 HUG와의 협상을 통해 어떻게 설득하고 조정하느냐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총회와 별개로 착공신고는 이달 말께 이뤄질 예정이다. 기존 아파트 철거는 대부분 끝났다. 이달 초 기준으로 전체 155개 동 중 140개 동이 철거돼 공정률 90%를 넘겼다. 강동구청에서 착공을 승인하면 조합원 입주권 거래는 즉시 막힌다. 둔촌동 A공인 관계자는 “실제 본공사 착공은 내년 1월로 예정됐는데 행정 절차만 서두른 감이 있다”며 “거래를 미리 막아두면 총회에서 부결됐을 때 털고 나가려던 조합원들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30대 싱글’도 당첨 가능할까
당초 올가을 분양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예비청약자들의 기다림은 더욱 길어지게 됐다. 철거 과정에서 석면 논란으로 예정 분양 시기만 이미 1년 이상 밀렸다. 그러나 일단 둔촌주공이 분양시장에 등판하면 가점이 낮은 예비 청약자들에겐 흔치 않은 내집마련 기회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가구수가 워낙 많아 상대적으로 낮은 경쟁률이 예상되는 까닭이다.
이 단지는 전체 1만2032가구 가운데 4841가구가 일반에 분양된다. 올 하반기 서울에서 분양한 주요 단지에 평균 1만2000여 개의 청약통장이 몰린 점을 감안하면 경쟁률이 한자릿수에 머물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203.8대1로 올해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던 ‘이수푸르지오더프레티움’의 청약자(1만8134명)가 모두 둔촌주공에 청약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경쟁률은 3.7대1에 머문다. 한 대형 건설사 분양사업팀 관계자는 “수백대 1의 경쟁률이 나오는 단지는 일반분양분이 워낙 적은 이유도 있다”면서 “둔촌주공은 10만명이 청약하더라도 최근 서울 다른 단지보다 낮은 20대1 정도의 경쟁률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청약을 받는 주택형의 숫자가 많은 것도 저가점자들에겐 기회다. 이 단지는 전용 84㎡ 8개 주택형(1273가구), 59㎡ 5개 주택형(1492가구) 등 총 18개 주택형이 입주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대형 1개 주택형(2가구)을 제외하면 모두 중·소형 면적대다. 경쟁이 분산되는 만큼 선호도가 낮은 주택형을 노리면 당첨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상한제 발표 이후 50점대 가까이 치솟은 ‘당첨 커트라인’이 크게 내려갈 수 있는 셈이다. 전용 29㎡와 39㎡ 등 초소형 주택 1100여 가구의 경우 1인가구가 신혼부부 등과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주택형이다.
공사기간이 긴 점도 당첨자의 비용 조달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평지에 들어서는 1000가구 규모 아파트의 공기(工期)는 통상 30개월 안팎이다. 그러나 둔촌주공은 1만2000가구가 넘는 몸집 때문에 42개월로 계획됐다. 연초 9510가구가 입주한 ‘헬리오시티(36개월)’보다 6개월 길다. 청약으로 당첨된 경우 중도금과 잔금을 마련할 시간이 그만큼 더 늘어난다는 의미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예상보다 높은 경쟁률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는 “당첨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예비청약자들이 늘면서 오히려 경쟁률이 오를 수 있다”면서 “철저히 비인기 주택형을 노리거나 같은 날 청약을 받는 다른 단지를 공략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