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동창 모임에서 의미 있는 논쟁이 벌어졌다. 한 친구가 노모의 치매를 걱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치매의 원인, 진단, 치료 등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다. 참석자 대부분이 의료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상식 수준의 비전문가적 견해를 내세우는 데 그쳤다.
하지만 치매 발병 원인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치매 발병 약 15년 전부터 뇌에 쌓이기 시작하고, 이를 양전자단층촬영(PET)이란 영상법으로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필자가 알려주자 그때부터 흥미로운 방향으로 대화가 전개됐다. 치매 치료제가 없는 현 상황에서 치매 발병 전 인지기능이 정상인 사람에게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뇌 축적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치료제도 없는데, 치매 증상이 없는 사람의 뇌에 발병 원인 물질이 쌓였다는 것을 찾아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당사자를 불안에 떨게 하고 사회경제적 부작용만 일으킬 뿐”이란 의견이 나왔다. “그래도 치매가 없을 때 조기에 찾아내 인생을 재설계하고 치료제 임상시험에도 적극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까지 반반으로 나뉘었다. 전문가단체는 전자의 의견을 지지하고 있긴 하지만 두 의견 모두 일리가 있다.
지난달 21일은 ‘치매극복의 날’이었다. 중앙치매센터가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18’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는 70만5473명으로 추정됐다. 65세 이상 노인 열 명 중 한 명꼴로 치매를 앓고 있는 셈이다.
국가치매관리 비용은 약 14조6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의 0.8%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무엇보다 고령 인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 치매 환자 수가 2024년 100만 명, 2039년 200만 명, 2050년엔 3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치매는 이제 국민 건강과 의료 차원을 넘어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됐다.
치매의 근본 치료제는 아직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연구 인력이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들여 치매 치료제 개발에 매달렸지만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나와 있는 치료제는 일시적 증상 완화에 그치며 근본적인 치료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인류의 질병 극복 역사가 그래왔듯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뇌과학과 관련 학문·기술에 힘입어 가까운 장래에 치매 극복이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