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의 혁신 없이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낙인 문제 해결 못해

입력 2019-10-08 15:26
수정 2019-10-08 15:27


멘탈헬스코리아는 카이스트 출신의 사회사업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비영리스타트업이다. 기존의 비영리 모델에 소비자 중심의 혁신적인 벤처모델의 결합을 통해 멘탈헬스 컨슈머 무브먼트를 펼치고 있다. 기존 공급자 위주의 정신건강 생태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멘탈헬스코리아의 최용석 대표를 청담동 사무국에서 만났다.

최용석 대표는 중학교 2학년 시절 쇼펜하우어와 장자에 대해 심취하면서 인간과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졌다. 정확한 의미는 잘 몰랐음에도15살 때 일기장에 ‘사회사업가’가 꿈이라 적었던 그는 20살이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가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최대표는 사회 사업(Social Work)으로 유명한 뉴욕의 Silberman School of Social Work에서 정신치료 석사를 수료했다. 이후 Henry Street Settlement House와 Hamilton-Madison House에서 케이스 워커로 수년 간 정신질환 당사자들과 함께 했다.

이어 그는 갱단에 있는 흑인과 히스패닉 청소년들을 위한 연극 극단 ‘Young theatre of new york’을 창단하여 자신들의 스토리로 연극을 만들고 학교, 교도소 등에 찾아가는 사회사업을 펼쳤다. 2000년 대 초반부터 NAACP(미국을 대표하는 흑인 인권 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며 흑인인권운동, 미혼모 지원과 해외입양반대운동 등 다양한 사회 운동을 펼쳐왔던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멘탈헬스코리아라는 비영리기관을 설립하고 정신건강 생태계에 뛰어들게 된 계기에 대해 최용석 대표는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의 자살 사고를 통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게 되었어요. 수 년간 자책감과 후회로 세월을 보내며 많은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최용석 대표는 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 첫 번째 자살 시도를 하여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약물 해독을 하고 사십 몇 만원을 내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던 모습이 반복적으로 생각났다고 한다. ‘왜 응급실 의사는 해독만 하고 그냥 보냈을까?’, ‘자살을 시도했는데 국내 최고의 병원이라는 곳에서 어떠한 서포트 시스템도 없이 독극물 증상 완화 치료만 하고 돌려보낸걸까?’, ‘소셜워커나 동료지원가가 바로 개입을 해서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사회적인 안전장치가 없는가?’ 등등 열악한 시스템과 본인에 대한 원망을 하며 전형적인 PTSD 증상으로 삶의 의욕을 잃어갔다. 그때 만약 긴급 상담 및 동료지원가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다음 번 시도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후회와 경험을 통해 타OECD 국가에 비해 사회적 안전장치가 부재함을 알게 되었고 이는 한국에 정착해 멘탈헬스코리아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그는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임에도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기존에 ‘관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질병모델’만으로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 문제, 조기예방과 개입의 문제, 사회적 처방의 문제 등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를 풀기가 어렵다고 강조한다.

멘탈헬스코리아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을 “환자=Patient”로 보지 않고 당당한 “소비자=Consumer”이자 “아픔의 경험 전문가”로 새롭게 관점을 전환한다. 우리나라 정신건강 생태계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주인공은 바로 ‘Empowered Consumer’, 똑똑한 소비자들이라는 것이다. 최대표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니라 스마트한 컨슈머가 되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우리나라 정신건강 생태계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의료계의 방식과 정부 정책의 범위 내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에서 벗어나, 정신건강 생태계의 진정한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비영리 모델에 기술과 소비자 중심의 혁신적인 벤처모델의 결합 없이는 불가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위해 최대표는 카이스트 출신이자 오랜 기간 정신건강 서비스의 공급자이자 소비자로 활동했던 멤버들을 모아 2018년 1월 임의단체를 설립, 1년 간의 활동 후 2019년 1월 서울시 산하의 비영리 민간단체로 공식 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약 2년이 채 되지 않은 단체이지만 이들이 국내 정신건강 생태계에서 발휘하는 사회적 영향력은 상당하다. 멘탈헬스코리아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피어스페셜리스트(Peer Support Specialist, 동료지원가) 양성 사업은 올해 2년 차로 총 110명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술대회 및 자살예방종합학술대회, 교육부 등에 초청되어 정책의 변화에 목소리를 높이고, 온/오프라인 동료지원 커뮤니티 운영을 통해 조기개입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또한 최용석 대표는 정신건강의 ‘사회적 처방’을 강조하며 디지털 멘탈헬스 사회적 처방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기존 정신의학계는 질병 모델 중심으로 약물치료 및 입원 외 지역사회와 연계한 커뮤니티 케어, 정신질환 인식개선 및 편견해소 운동, 예방교육, 사회적 처방에는 미비했던 것이 사실이며 그 결과로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방치된 사람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건강 생태계에 사회적 처방의 개념을 확산하고 구현되게 하여 병원 밖에서도 촘촘한 사회적 지지망에 연결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멘탈헬스코리아에서 양성된 피어스페셜리스트들은 ‘아픔의 경험 전문가’로서 디지털 멘탈헬스 사회적 처방 플랫폼에서 활동하며 조기발견과 개입, 지원과 다양한 사회적 처방 커뮤니티에서 동료 지원 활동을 수행하게 된다.

최용석 대표는 멘탈헬스코리아의 사업을 통하여 10년 후에는 적어도 정신건강 이슈에 대한 편견과 무지로 인해 정신건강의 문제를 겪는 이들이 고통을 겪는 사회에서 벗어났으면 한다고 말한다.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장을 통해 편견은 줄이고, 소비자의 권리는 상승시키며 조기치료의 확산을 통해 사회경제적 비용을 혁신적으로 절감시키는 정신건강의 사회혁신모델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멘탈헬스코리아가 대한민국 최대의 정신건강 소비자 단체로 성장하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높은 수준의 정신건강 서비스를 누리고 평가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강한 정신건강 생태계가 오는 날을 기대해본다.

경규민 한경닷컴 기자 gyu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