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유통시장, 규제 아닌 진흥이 필요하다

입력 2019-10-07 17:49
수정 2019-10-08 00:23
상권영향평가의 범위 확대를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연말부터 시행되면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의 신규 출점은 더욱 어렵게 됐다. 재계가 대형마트의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대규모 점포 규제를 재검토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규제는 늘어나는 형국이다.

대형마트, SSM 등 오프라인 유통은 온라인 쇼핑에 밀려 유례없는 저성장 기조로 전환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대규모 점포 규제 효과와 정책 개선 방안’ 보고서를 통해 대형마트가 마이너스 성장세로 바뀐 현 시점에 대규모 점포 규제가 적합한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규제의 전통시장 상인 보호 효과는 미미한 반면,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식자재 마트 등만 증가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3대 대형마트의 신규 출점은 올 들어 두 건에 불과하며, 백화점은 신규 출점이 한 건도 없었다.

기존 시행규칙에서는 출점 시 영향평가 대상이 음·식료품 위주 종합소매업으로 한정돼 있었지만, 새로운 시행규칙은 입점 예정인 주요 업종과 표준산업분류 세분류가 동일한 업종으로 평가 대상을 확대했다. 사실상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모든 상품군의 업종에 대한 영향평가를 해야 한다. 상권영향평가 결과가 부정적이면 지역협력을 통해 이를 보완해야 한다.

이번 개정 시행규칙은 이전에 비해 개선되기는 했다. 상권영향을 더 포괄적, 입체적으로 분석하도록 하고 있으며 매출, 고용 등 더욱 구체적인 계량적 측면도 포함됐다. 하지만 문제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분석 업종이 최대 20~30개로 증가해 사업자 부담이 커졌고, 경쟁 업종이 포괄적이어서 백화점 고가 의류와 골목상권의 저가 보세의류가 경쟁관계가 됐으며, 대규모 점포 출점 반년 전에 입점 점포 구성을 확정해야 한다. 대형 점포 출점 영향은 상권의 역동적 변화로 인해 장단기에 걸쳐 복합 다면적으로 나타날 텐데, 이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더 근원적인 문제다.

주변 상권에 대한 영향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방법은 없다. 특정 상권의 부침은 교통, 인구, 다른 상권 경쟁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아 신규 대형 점포만의 영향으로 문제를 풀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도시계획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지구단위계획 수립 시 대형 유통점 용도 부지를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구도심 재개발이나 신도시 건립 시 대형 유통점을 원천 봉쇄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다. 구도심 재개발이나 신도시 건립 때는 도시 기능과 소비자후생 측면에서 대형 유통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유통점포 입지 규제의 최우선 기준을 도시 경쟁력 확보와 주민·관광객의 후생에 두고 있다. 해당 지역에 가장 필요한 시설과 업종 중심으로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주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역과 상권의 특성과 발전을 고려해 출점할 곳엔 출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권영향평가 과정의 공정성도 제고해야 한다. 지금은 특정 사설업체와 전문가 등이 수행하고 있는데, 공정성과 엄정성 측면에서 신뢰할 만한지 의문이다. 상권영향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공식 협의체 또는 평가기관을 정해 더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평가 과정 자체가 또 다른 공정성 시비의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

유통 규제 대신 ‘유통 진흥’도 필요하다. 대형마트는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와의 경쟁으로 고전 중이다. e커머스 기업은 24시간 가동되고 있으나,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매장 영업이 끝난 밤 시간대와 법적 의무 휴무일에 배송할 수 없다. 물론 오프라인 매장 영업 규제를 온라인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시대적 상황에 맞지 않는다. 온라인은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과 직접적 경쟁관계도 아니다. 유통시장에 채찍만 들지 말고 당근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