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소규모 태양광, 풍력발전 사업자로부터 전기를 사들이는 데 쓰는 신재생의무공급(RPS) 비용이 빠르게 늘어나 2023년에는 4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따른 영향이다. 안 그래도 탈(脫)원전 정책 등의 여파로 올 상반기 928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실적이 악화되는 가운데 RPS 비용까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됐다. 올해 상반기 기준 신재생에너지 구입 단가는 ㎾h당 100.15원으로 원전(55.76원)의 두 배 수준이다. 한전은 상대적으로 비싼 신재생에너지를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셈이다.
RPS 비용 4년 새 두 배 가까이 될 듯
6일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입수한 ‘한전 RPS 전망’ 자료에 따르면 한전의 RPS 비용은 올해 2조2761억원에 이를 것으로 자체 추산했다. 또 내년 2조8660억원, 2021년 3조3554억원, 2022년 3조9611억원, 2023년 4조4021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로 급증할 전망이다.
2012년 도입한 RPS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활용을 늘리기 위한 제도다. 신재생에너지법에 따라 한국동서발전 등 발전량 50만㎾를 넘는 대규모 발전사업자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자로 지정돼 총발전량의 일정 비율만큼을 신재생에너지로 채워야 한다. 자체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력이 부족하면 소규모 사업자로부터 구매해 의무량을 메꿔야 한다. 공급의무자가 구입한 재생에너지 비용은 한전이 보전해준다.
RPS로 인한 한전의 부담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정부가 대형 발전사의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 비율을 2012년 2%에서 올해 6%로 꾸준히 늘려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비율을 매년 1%포인트씩 끌어올려 2023년부터는 10% 이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탈원전에 탈석탄까지…부담 눈덩이
한전의 탄소배출권 비용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 따라 발전 자회사는 부족한 배출권을 사들여야 한다. 한전 자체 전망에 따르면 한전의 탄소배출권 구입 비용은 올해 8423억원에서 내년 1조2763억원으로 늘어난다. 2023년엔 1조3992억원에 달하는 등 매년 1조원 이상 투입해야 할 전망이다.
탈원전에 이은 탈석탄도 또 다른 부담이다. 지난달 30일 대통령 직속 미세먼지 문제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는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를 ‘고농도 미세먼지 계절’로 지정해 12월~이듬해 2월에 국내 석탄화력발전소 60곳 중 최대 14기를, 3월엔 최대 27기를 가동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권고안대로라면 상대적으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석탄발전소를 발전단가가 더 높은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해야 한다. 9월 기준 ㎾h당 LNG 발전단가는유연탄(석탄)의 1.5배 수준이다. 한전 재무상황을 둘러싼 우려가 나오자 국가기후환경회의 측은 “국고를 지원하는 것보다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한시적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전기요금 인상’ 카드를 들고나오기도 했다.
정유섭 의원은 “탈원전에 따른 원전 이용률 하락에 RPS, 온실가스 배출권 부담까지 더해져 한전은 옴짝달싹도 못 하는 처지”라며 “한전 부채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