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해외에 쌓아둔 유보소득 5년간 2.2兆…세금 부담에 못 들여온다"

입력 2019-10-04 17:10
수정 2019-10-05 01:32
한국의 이중과세 제도와 높은 법인세율이 국내 기업들의 ‘유턴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 쌓아 놓은 뒤 국내로 들여오지 못하는 돈이 지난 5년간 약 2조2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4일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해외 유보소득은 2014년 3211억원에서 2016년 3852억원, 2018년 5606억원으로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 4년간 74.6%, 연평균 18.6%씩 증가한 금액이다. 해외 유보소득은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번 돈 가운데 국내로 들여오지 않은 소득이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한국이 채택하고 있는 ‘거주지주의 세금 계산’ 방식이 꼽히고 있다. 예컨대 한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 아일랜드 지점에서 번 5000억원을 국내로 들여오려면 아일랜드 정부에 법인세를 납부한 뒤 한국 정부에도 추가로 세금(법인세)을 내야 한다.

반면 해외 소득에 과세하지 않는 ‘원천지주의 과세’ 방식을 따르고 있는 영국 기업이 아일랜드에서 번 돈을 자국으로 들여올 때는 아일랜드에만 세금을 내면 된다. 이중과세를 막기 위해서다. 이런 차이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해외 소득을 현지에 쌓아 두거나 아예 외국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높은 법인세율도 기업들의 국내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박 의원은 “선진국들은 경쟁적으로 법인세율을 낮추고 있는데 한국은 2017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되레 22%에서 25%로 높였다”며 “원천지주의 방식으로 개편하고 법인세율을 낮춰 국제 조세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각국은 자국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원천지주의 방식을 도입하는 추세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지난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종전 38.9%에서 25.9%로 한꺼번에 13%포인트 낮췄다. 동시에 한국의 거주지주의 방식과 비슷했던 ‘글로벌 과세제도’를 원천지주의 방식으로 변경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거주지주의 방식을 채택한 국가는 한국, 아일랜드, 멕시코 등 5개국에 불과하다.

기획재정부는 법인세율 인하와 과세 방식 변경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국감에서 “법인세를 추가로 인하해야 할 요인이 크지 않다”며 “법인세율을 인하했다가 세수 결손만 생기고 투자는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원천지주의 방식 도입과 관련해선 “지금도 해외에 낸 세액 중 일부를 공제해 주고 있는데 원천지주의 방식까지 도입하면 순수 국내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