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2002년 등장한 뒤 전체 골프 시장의 성장을 견인해온 스크린골프의 위상을 빗댄 말이다. 최근 발간된 ‘한국골프산업백서 2018’에 따르면 전체 골프 시장 규모는 12조4028억원대(2017년 기준)로 추정된다.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후 위축된 기업 접대문화에도 골프 시장이 매년 7% 이상씩 성장한 것은 스크린골프를 빼곤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스크린골프 시장 규모는 2017년 1조2819억원으로 필드골프 시장(2조8382억원)의 절반 수준까지 팽창했다.
스크린골프 문화를 선도해온 1위 업체 골프존은 한때 시장 점유율이 80%를 웃돌았다. 후발업체엔 ‘넘사벽’ 그 자체였다. 실제 골프 게임을 재현한 첨단기술과 그래픽 등은 추종을 불허했다. 최근 가상골프를 구현해내는 기술 격차가 좁혀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카카오VX는 인공지능(AI)을 결합한 서비스를, SG골프는 커브드 스크린의 생동감 넘치는 그래픽을 앞세워 골프존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존재감’ 높이는 후발주자들
현재 스크린골프 시장은 골프존의 독주체제 속에 카카오VX와 SG골프가 추격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골프존은 전국 4900여 개, 카카오VX는 1400여 개, SG골프는 1070여 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골프존의 틈새를 파고드는 매장 진출 전략에 힘입어 카카오VX와 SG골프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16%와 12% 수준인 것으로 추산된다. 한때 80%를 웃돌던 골프존의 점유율은 56% 수준까지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후발주자들이 점유율을 끌어올린 것은 하드웨어 기술력을 상당한 수준까지 따라잡은 덕분이다. 이용자가 클럽으로 공을 때렸을 때 타구 방향을 인식하는 센서를 비롯한 하드웨어의 정확도는 브랜드별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그래픽 구현력에서는 약간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임팩트 후 공의 움직임이 화면에 얼마나 빨리 반영되는지, 공이 떨어지고 페어웨이 위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굴러가는지 등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평가했다.
기술 격차가 좁혀지는 동안 업체 간 ‘피 튀기는’ 특허 분쟁이 있었다. 골프존은 2016년 카카오VX와 SG골프를 상대로 쓰리매트 등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일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SG골프는 2017년 다른 경쟁사를 상대로 ‘AI 캐디’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신기술과 선명한 디자인 앞세워
후발주자들은 새로운 서비스로 차별화하고 있다. 2012년 마음골프가 만든 ‘티업비전’으로 시작한 카카오VX는 모기업인 카카오에 편입된 2017년을 전후로 AI 등 최신 기술을 접목해 스크린골프업계에서 변화를 이끌고 있다. 2017년 9월 업계 최초로 음성인식 AI를 도입했다. 이용자들은 복잡한 기계 조작을 할 필요 없이 “티를 높여줘” “멀리건 쓸게” 등의 말로 게임을 조절할 수 있다.
작년 11월에는 동작인식 AI를 적용했다. 뎁스(심도) 카메라의 센서를 통해 이용자가 스윙할 때 정면과 측면 상단 등 다각도에서 촬영한 스윙을 프로골퍼의 스윙과 비교 분석할 수 있도록 했다. 스크린골프를 통해 자신의 스윙을 개선해보고자 하는 이용자들의 욕구를 반영한 서비스다.
3대 경쟁사 중 가장 늦은 2015년 스크린골프에 뛰어든 SG골프는 선명한 그래픽으로 승부하고 있다. 프로젝터업체와 협업해 스크린에 투사된 그래픽을 맨눈으로 봤을 때 가장 선명한 화면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다른 업체들이 평면 스크린을 제공하는 데 비해 SG골프는 커브드 스크린을 공급해 파노라마 화면에서 이용자들이 골프장에 온 것과 비슷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게임에 대한 몰입감은 높여주고 눈의 피로는 덜어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게임의 중요한 요소인 ‘경기장’도 다양화했다. SG골프는 업계 최다인 217개 골프장, 328개 코스를 공급하고 있다. 겨울 골프장을 구현한 겨울CC, 독도와 태종대를 비롯해 금강산CC, 평양CC 등 북한 골프장까지 다양한 가상 코스를 제공하며 재미를 더했다. 이용자들은 30여 개 가상의 해외 골프장에서도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
후발주자들의 강점은 가격이다. 카카오VX와 SG골프 등이 매장 점주들에게 공급하는 장비 가격은 골프존 대비 40~50% 저렴하다. 이용자들의 가격은 골프존의 최신 모델 대비 10%가량 싼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골프존이 독과점 논란이 불거진 뒤 2014년에 1년 동안 시스템 판매를 중지했고, 2015년엔 점주들과의 상생을 위해 거리 제한을 두면서 총량제를 유지했던 틈새를 후발주자들이 파고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