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신반포15차·미성크로바 "그래도 후분양 강행하겠다"

입력 2019-10-08 10:45
수정 2019-10-08 10:46

정부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유예 방침에도 서울 강남권 일부 재건축 단지들이 후분양 계획을 유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장 선분양으로 선회하더라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가를 시세보다 낮게 억눌러서다. 차라리 후분양 시점에 택지비를 높게 인정받는 게 유리하단 계산이 나오고 있다.

◆‘HUG 관리’보다 상한제가 유리?

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반포동 일대 알짜 재건축 사업으로 꼽히는 신반포15차가 후분양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달께 착공과 동시에 일반분양에 나설 수 있지만 분양 시점을 3년 여 뒤로 잡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유예 기간으로 못 박은 내년 4월을 훌쩍 넘긴 시점이다. 이 단지 조합 관계자는 “후분양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상한제 6개월 유예 발표와는 관련이 없다”며 “향후 상한제 적용지역으로 지정된다면 감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반포15차는 일찌감치 이주와 철거를 마친 상태다. 이달께 착공과 동시에 일반분양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다. 하지만 후분양 방침을 세운 건 더 오래 전이다. 2017년 대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할 때부터 분양 방식을 후분양으로 결정하고 총회 의결까지 마쳤다. HUG의 고분양가 관리를 피하기 위해서다. 선분양을 할 경우 인근 반포우성이 최근 분양보증을 받은 3.3㎡당 평균 4800만원대 안팎에 분양가를 책정해야 한다. 바로 앞 단지인 ‘아크로리버파크’ 소형 면적대가 3.3㎡당 1억원에 매매된 것과 비교하면 반값 수준이다.

잠실 미성·크로바 역시 같은 이유로 후분양에 무게를 두고 있다. HUG 기준대로라면 3.3㎡당 2995만원대에 분양가가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 연접한 ‘파크리오’의 매매가격은 3.3㎡당 5000만원대지만 입주한 지 10년이 넘어 분양가 산정 기준에서 빠진다. 이 때문에 가장 최근에 입주한 단지인 ‘잠실올림픽아이파크’ 평균 분양가(3.3㎡당 2852만원)의 105%에 해당하는 금액(3.3㎡당 2995만원)이 예정 분양가가 된다. 조합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 유예 기간이 빠듯한 데다 그 안에 철거를 마치더라도 HUG 기준대로 분양하면 조합원 손실이 크다”며 “공시지가가 꾸준히 오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차라리 상한제를 적용받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한제는 택지비와 건축비, 적정 이윤 등을 토대로 분양가를 따지는데 여기서 택지비의 비중이 가장 높다. 조합들이 선분양과 후분양의 유불리를 따져본 핵심도 택지비다. 후분양을 선택한다면 상한제를 피할 수 없지만 적어도 분양 시점인 2~3년 뒤까지의 공시지가 상승분은 분양가에 반영할 수 있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공동주택 분양가격 산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은 택지비를 따질 때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감정평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초구와 송파구의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 상승률은 각각 14.28%와 9.73%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택지비를 따질 때 구체화되지 않은 개발이익은 배제하도록 했지만 공시지가 자체가 매년 오르고 있다”며 “조합들이 어차피 깎일 분양가라면 HUG 기준보다는 상한제가 이득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조합 갈팡질팡…시장 혼란 자초한 정책

후분양 과정이 쉬운 건 아니다. 조합이 초기에 부담해야 하는 사업비가 많은 까닭이다. 선분양은 착공과 동시에 분양을 진행하면서 일반분양자들의 계약금과 중도금 등으로 공사비를 조달한다. 그러나 후분양은 공사 기간 동안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막대한 돈을 끌어와야 하고 이자도 물어야 한다. 분양 시점의 주택경기가 호황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신반포15차의 경우 예정된 공기만 36개월이다. 당장 착공해도 2022년 10월께 준공한다.


애초 후분양 방식의 정비사업은 조합들이 HUG의 고분양가 관리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내년 봄 입주를 앞두고 있는 ‘과천푸르지오써밋(과천주공1단지 재건축)’이 대표적이다. 3.3㎡당 3000만원 아래로 분양가가 눌리자 후분양을 통해 3.3㎡당 4000만원대로 분양했다. 지상층 골조 공사가 3분의 2 이상(골조공사 완료로 기준 강화 추진) 진행됐을 때 건설사 두 곳이 연대보증을 서면 HUG의 분양보증이 필요 없어서다. 분양가를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강남 재건축 단지들은 이를 모델로 삼았다. 시공사 수주전에서도 어김없이 후분양 조건이 제안서에 담겼다. 올여름 HUG가 고분양가 관리기준을 더욱 강화하자 선분양을 예정하던 신반포3차·경남아파트(‘래미안원베일리’)과 삼성동 상아2차(‘래미안라클래시’) 등도 후분양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카드를 꺼내들게 된 이유다. 그러자 ‘벼락치기’로 후분양을 검토했던 단지들은 대부분 선분양으로 재선회했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카페 대표는 “상한제는 선분양으로 유도해 기존대로 HUG의 분양가 관리를 받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며 “정부가 공급 절벽에 따른 강남집값 추가 상승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도입 배경에 대해 지난 2일 국토부 국정감사에서 “과천 아파트 분양가격이 3.3㎡당 4000만원이 기록하게 되면서 강남이 1억을 넘는 건 시간 문제로 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고분양가 관리 회피 목적의 후분양이 이뤄지는 곳부터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으로 ‘핀셋 지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렇다고 후분양을 선택한 단지들에 퇴로가 없는 건 아니다. 상한제로 인한 분양수입 감소가 더 크다고 판단되는 경우 공사 중에라도 선분양으로 선회하면 된다. 다만 조합원들의 총의를 다시 모으거나 시공사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수 있다. 재개발·재건축조합들의 연합체인 미래도시시민연대 관계자는 “처음부터 HUG의 분양가 산정 기준이 합리적이었다면 후분양과 상한제 모두 얘기조차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비사업 구역들이 선분양과 후분양을 두고 갈팡질팡하면서 조합원과 수요자 등 전체 주택시장에 막대한 혼란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