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통화는 원, 중국은 위안, 일본은 엔이다. 발음과 표기는 다르지만 모두 ‘둥글다’는 의미의 한자 ‘원(圓)’에서 나왔다. 중국의 위안(元)은 圓과 똑같은 음으로 글자가 복잡해 ‘元’으로 간략하게 표기한다. 일본의 엔을 표기하는 ‘円’도 圓과 똑같은 뜻이다.
일본의 역사 교양서 작가 미야자키 마사카쓰는 저서 <돈의 흐름으로 보는 세계사>에서 동아시아 3국의 통화명이 유럽의 ‘대항해 시대’에 스페인이 멕시코에서 주조한 멕시코달러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스페인은 16세기 페루와 멕시코 은광에서 채굴한 엄청난 양의 은을 수송하기 편하도록 멕시코에 있는 화폐 주조소에서 주화로 제작했다. 은화 형태로 제조된 멕시코달러 중 3분의 2는 스페인 세비야에 있는 통상원으로 보내졌다. 나머지 3분의 1은 명나라의 비단과 도자기 등을 손에 넣기 위해 태평양을 횡단, 필리핀 마닐라로 보내졌다. 이를 마닐라 갤리온 무역이라고 한다. 명나라에 대량으로 유입돼 널리 유통된 멕시코달러는 ‘은원(銀圓)’으로 불렸다. 이 명칭을 바탕으로 원, 위안, 엔이란 이름이 탄생했다. 한·중·일의 통화명은 공통적으로 ‘세계 최초의 글로벌 통화’인 멕시코달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약 2500년간 은화에서 지폐, 다시 전자화폐로 변모해온 통화의 역사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서술한다. 통화는 단순한 화폐가 아니다. 저자는 통화를 ‘국가가 가치를 보증하고 강제로 유통한 돈’으로 정의한다. 은덩이가 거래의 수단인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한 때는 4000년 전이지만 세계 최초로 통화가 출현한 것은 기원전 6세기 세계사에서 첫 번째 대제국으로 이름을 올린 페르시아의 성립과 함께였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3세기 중화 세계를 통일한 진나라에서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구리로 만들어진 반량전이란 통화가 처음 등장했다.
저자는 국가, 민족, 이념 등의 기준이 아니라 ‘돈의 흐름’에 따라 조망해야 세계사의 진상(眞相)이 보인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로마제국이 자멸한 것은 ‘질 낮은 통화’를 발행했기 때문이며, 로스차일드 가문이 19세기 유럽 금융의 지배자가 된 배경에는 나폴레옹전쟁과 거액의 비용 문제가 얽혀 있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파운드와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가 된 이유, ‘닉슨 쇼크’가 일어난 배경과 영향 등 사회 변혁을 주도하는 ‘돈’과 이를 둘러싼 시스템의 변화를 도표를 곁들여 알기 쉽게 풀어준다. 세계사를 공부하는 입문서이자 ‘경제의 혈액’인 통화를 통해 현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대중 교양서로서 일독할 만하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