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건국 7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다. 톈안먼 성루에는 인민복 차림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좌우에 고령의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자리를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월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없애 장기집권 기반을 마련한 시 주석이 마치 전임자들을 좌우에 거느린 듯한 모양새였다. ‘시(習)황제’로 불릴 만큼 거대 중국의 권력을 장악한 시진핑 체제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의 엘리트 정치>에서 “시진핑의 권력을 과대평가해 집단지도 체제가 해체되고 1인 지배가 등장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현재의 집권형 집단지도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조 교수는 마오쩌둥 이후 현대 중국의 정치체제를 연구해온 국내 최고의 권위자다. ‘마오쩌둥에서 시진핑까지’를 부제로 단 이 책은 중국의 성공적인 개혁·개방 요인을 분석해 2016년 출간한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3부작에 이어 공산당 일당지배 국가인 중국의 정치를 움직이는 키워드와 작동 방식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전망한다. 이를 위해 신중국의 첫 리더였던 마오쩌둥부터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최고 권력이 어떻게 승계되고 움직여왔는지 분석하면서 결론 부분에서 시진핑 체제의 미래를 전망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의 집단지도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을 둘러싼 주변 정세가 유동적이고 그에 따라 권력구도가 요동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는 중국 공산당 창건 100주년 다음해인 2022년 열릴 예정인 공산당 20차 전당대회에서의 권력 승계를 중심으로 세 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한다.
첫째는 후진타오처럼 공산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을 다음 지도자에게 동시에 이양하는 것, 둘째는 장쩌민처럼 공산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을 분리해 단계적으로 이양하는 것, 셋째는 시진핑이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 주석뿐만 아니라 공산당 총서기에도 다시 취임해 권력 이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의 실현은 기존의 권력 승계 규범은 무시되고, 집단지도가 위태롭게 돼 사실상 시진핑의 ‘1인 지배’가 시작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저자에 따르면 세 가지 시나리오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두 번째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권력욕이 강한 시진핑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태로 봐서 가능성이 낮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공산당 안팎의 저항과 반발이 클 것이고 이를 해소하려면 무리수를 둬야 하는 위험이 따른다. 따라서 시진핑이 최고 지도자로서 엘리트 정치를 주도하는 집권형 집단지도를 계속할 수 있는 두 번째가 유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진핑의 1인 지배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신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중화민족의 부흥을 이루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의 실현과 2015년 말 시작된 군사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뚜렷한 비전과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견제를 뚫고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우뚝 서려면 자신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권력 승계 연기를 역설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경우에도 시진핑의 1인 지배는 마오쩌둥과 같은 독재적 방식으로 엘리트 정치를 운영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중국은 건국 이후 한 번도 변화 없이 공산당 1당 국가를 유지해왔다. 그러면서도 지배체제와 유형은 계속 변해왔다. 저자는 1949년 이후 중국의 엘리트 정치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마오쩌둥 시대의 1인 지배, 덩사오핑 시대의 원로 지배, 덩샤오핑 이후의 집단지도다.
마오쩌둥은 혁명의 지도자이자 건국의 아버지라는 카리스마적 권위와 권력을 행사했다. 엄청난 실패와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이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결과였다. 마오쩌둥 이후엔 덩샤오핑을 비롯한 소수의 혁명 원로가 공식 직위와 관계없이 실제 권력을 행사했다. 공식 정치의 최고 직위는 이른바 ‘8대 원로’들의 비공식 모임에서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최고 정책 집행자’에 불과했다. 덩샤오핑 이후 혁명 원로들마저 사망해 비공식 정치가 사라지면서 시작된 것이 당·정·군의 주요 권력기관 지도자들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정치국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다.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의 시대는 그렇게 열렸다.
저자는 시기별로 지배체제가 어떻게 시작되고 공고화했는지를 권력의 근원과 집중도, 행사방식, 최고 지도자와 다른 지도자들 간의 관계 등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그러면서 공산당 1당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기별 상황과 지도자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져온 지배 양상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시진핑의 권력 공고화 과정은 집단지배의 틀 안에서 분권형에서 집권형으로 바뀌었을 뿐 장쩌민, 후진타오와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 보면 집단지도에서 1인 지배로 역행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