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만 앞선 '영농형 태양광'…농가도 외면

입력 2019-10-03 17:09
수정 2019-10-04 01:42
정부가 농사를 지으면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 사업을 적극 장려하고 있지만 실제 보급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치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다 농지 사용허가기간 역시 8년으로 짧아서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400억원의 영농형 태양광시설 예산을 확보했으나 상반기까지 7억2800만원만 집행하는 데 그쳤다. 예산 집행률이 1.8%에 불과했다. 작년엔 농촌형 태양광 사업을 포함해 총 1530억원이 배정됐지만 영농형에 실제로 투입된 예산은 1억1000만원뿐이었다. 대부분 자금이 농촌형 태양광 시설을 짓는 데 투입됐다.

농지 태양광은 크게 농촌형과 영농형으로 구분된다. 농촌형 태양광은 농업인이 거주지 주변 농지의 지목(地目)을 ‘잡종지’로 바꾼 뒤 발전시설(500㎾ 미만)을 설치하면 되지만, 영농형은 본인 소유 농지에 건설한 뒤 경작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과수 버섯 등 농작물 상부에 태양광 패널을 얹는 식이어서 설치비가 비싸고 더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농촌형 방식은 100㎾당 400㎡의 부지가 필요하지만,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하려면 최소 700㎡가 필요하다. 한 태양광 건축업자는 “정부는 경작물 감소가 별로 없는 영농형 태양광의 확산을 원하지만 실제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작년부터 농촌 태양광 사업에 대한 시설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대출을 신청하면 연 1.75%의 낮은 금리로 15년 동안 빌려준다. 5년 거치(이자만 내는 기간) 및 10년 원리금 분할상환 형태다.

영농형 태양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농지법 개정도 난항을 겪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지의 태양광 허가기간을 8년에서 2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지지부진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지 사용기간을 대폭 늘리는 안을 작년부터 검토했는데 추가로 따져볼 게 생겼다”며 “농지형 모델의 효용성 등에 관한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면 내년 중 농지법 개정을 재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전력공사의 계통연계가 지연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막상 태양광 시설을 구축해도 실제 전력으로 활용하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다.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생산한 전력을 외부에 판매하려면 송·배전망을 연결하는 계통연계가 필수다.

태양광업계 관계자는 “농촌 지역엔 송·배전망을 전부 새로 깔아야 하는데 보조금을 받으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계통연계까지 1~2년 이상 걸리는 게 보통”이라고 전했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지역별 신재생에너지 계통접속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계통접속 신청 건수는 총 10만3672건이었지만 이 중에서 계통접속이 완료된 것은 5만9935건으로 57.8%에 그쳤다.

전국 각지에 태양광 발전소가 대폭 늘면서 시장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도 영농형 태양광 활성화가 더딘 이유다. 시장이 포화 상태라고 판단해 추가 진입을 망설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각종 보조금 혜택이 늘면서 태양광 공급이 급증했다. 태양광 전력의 주가이자 화폐 역할을 하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는 2017년 12만원대에서 올해 5만원대로 반 토막 났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