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월가가 국채에 '올인'한 이유는

입력 2019-10-02 07:46
수정 2019-12-23 00:01

미국의 초단기 자금 시장의 유동성 부족이 10월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초 분기말이 지나면 레포(Repo) 시장이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새로운 분기가 시작된 1일(현지시간)에도 여전히 뉴욕연방은행의 시장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 지속됐습니다.

수년간의 양적완화로 달러가 충분히 풀려있는 상황인데도, 왜 유동성 부족이 이어지고 있을까요.

뉴욕 Fed는 1일 레포 거래를 통해 548억5000만 달러의 유동성을 초단기 자금시장에 공급했습니다.

레포 금리 혼란은 2주전인 지난달 16일 본격화됐습니다. Fed의 기준금리 내인 2.1%선에서 안정적 흐름을 유지했던 오버나이트 금리는 16일 기준금리 상단을 돌파했고 17일엔 한 때 10%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뉴욕 Fed는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레포 거래를 통한 유동성 공급에 나섰습니다.


혼란의 원인은 4가지로 지목됐습니다.

① 세금 납부를 위한 기업 자금 수요 집중=지난 9월 16일은 미국 기업들의 3분기 법인세 분납 마감일이었다.

② 미 정부가 대규모 국채를 찍어내 시중자금을 흡수=미 재무부는 지난 7월 재정적자 한도가 확대된 뒤 국채를 집중적으로 발행했다. 9월 둘째주 당시 국채 입찰에 따른 자금 납입이 몰렸다.

③ 통상 분기말에는 대형 은행들이 초과지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초단기인 레포 자금 운용을 줄인다.

④ Fed 양적긴축 결과 시중 유동성 감소=한때 4조5000억달러까지 늘었던 Fed의 자산은 양적긴축을 통해 지난달 3조7696억달러까지 감소했다.

이들 요인은 근본적 문제라기보기는 기술적 요인입니다. 이에 따라 시장은 3분기말, 즉 9월말이 지나면 오버나이트 시장이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4분기를 여는 첫날인 10월1일에도 뉴욕 Fed의 레포 운용에 500억달러 이상의 수요가 몰린 겁니다.


월가의 한 채권운용역은 레포 시장 혼란의 근본적 원인을 향후 미국 경제를 어둡게 본 월가 금융사들이 유동성을 장기 국채 등에 쏟아부은 탓으로 해석했습니다.

10년물 미 국채는 지난달 3일 연 1.43%까지 급락했다가 13일에는 1.9%까지 반등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다시 하락을 시작해 이날 10년물 수익률은 1.63% 수준까지 다시 낮아졌습니다.

9월 초반 미중 협상 가능성이 높아지고, 경제 지표가 개선되면서 채권 가격이 낮아졌지만 이후 다시 수요가 몰리면서 크게 오른 겁니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입니다.

미 금융사들이 국채에 돈을 묻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현재 국채 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판단해 좋은 투자기회라고 봤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미국 경제가 둔화된다면 금리는 더 낮아질 테니까요.

특히 미중 무역협상 실패는 이런 경기 둔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습니다. 브렉시트, 이란을 둘러싼 긴장 등 경기 둔화와 금리 하락을 부추길 다른 지정학적 위험도 워낙 많습니다.

이 때문에 국채에 돈을 묻고 가기로 한 수요가 많았고, 그 영향으로 초단기 자금 시장에서도 유동성이 말라버렸다는 해석입니다. 분기말 기술적 요인이 사라졌는데도, 유동성 부족이 계속되고 있는 건 이런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이날 발표된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8월 49.1에서 9월 47.8로 하락해 2009년 6월 이후로 10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이에 다우 지수는 300포인트가 넘게 폭락했습니다.

그리고 애틀랜타연방은행의 미국 성장률 예측 모델인 ‘GDP나우’는 3분기 성장률을 1.8%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미국 기업들의 3분기, 4분기 실적도 관세 영향 등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관측이 강합니다.

CNBC는 이날 열흘 뒤 시작되는 미중 무역협상을 앞두고 지난주 초 백악관 내부에서 중국 기업들의 미국 상장 및 미국 연기금의 중국 투자를 막는 방안을 연구하기 위한 ‘정책 메모’가 회람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등이 ‘가짜 뉴스’라고 폄하했지만 실제 그런 내용이 내부에서 돌아다닌 겁니다.


월가의 한 자산운용역은 “이미 올해 S&P500 지수는 20% 가량 올랐고, 채권 값도 급등했다”면서 “미중 무역전쟁 등 위협 요인들이 많은 데다 증시가 사상 최고 수준에 있음을 고려하면 안전자산에 돈을 묻어놓고 잠시 상황을 관망하겠다는 투자자들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