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클 두산"…경영도 역전승 꿈꾸는 박정원

입력 2019-10-02 16:54
수정 2019-10-03 01:50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의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지난 1일 서울 잠실야구장. 5-5로 동점이던 9회말 두산 박세혁이 친 공이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포수 뒤편 관중석에 앉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57·사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박 회장은 3루 코치처럼 팔을 크게 휘저었다. 2루에 있던 대주자 김대한이 3루를 돌아 홈까지 파고들었다. 두산이 2019시즌 프로야구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박 회장은 ‘어퍼컷 세리머니’로 기쁨을 만끽했다. 옆자리에 있던 부인 김소영 여사(54), 아들 상수씨(25)와 얼싸안았다. 두산의 올 시즌 극적인 우승은 부진을 털어내고 턴어라운드(실적 개선)에 성공한 두산그룹과 닮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위기를 기회로

시즌을 앞두고 두산의 정규리그 우승을 예상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20승 포수’로 불리며 팀 전력의 절반을 차지하던 포수 양의지가 NC로 옮겼기 때문이다. 시즌 중반 3위였던 두산은 선두 SK 와이번스와 9경기 차까지 벌어졌다.

박 회장이 두산 수장(首長)에 오른 2016년은 창립 120주년을 맞은 그룹 역사상 최대 위기의 해로 꼽힌다. 직전 해인 2015년 (주)두산과 두산중공업 등 주력 계열사의 순손실은 1조7000억원에 달했다. 그는 취임 직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두산DST(3558억원)와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 사업부(1조1308억원), 두산건설 배열회수보일러 사업부(3000억원) 등 알짜 사업을 과감하게 매각했다.

대신 연료전지와 2차전지용 전지박 등 신사업 투자를 확대했다. 박 회장 주도로 시작한 연료전지 사업은 시장 진출 3년 만인 지난해 1조원대 수주 실적을 달성했다. ‘아픈 손가락’으로 꼽히던 두산인프라코어도 글로벌 건설 경기 호조 속에 지난해 848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1937년 회사의 모태인 조선기계제작소 창립 이후 최대 실적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05년 두산그룹에 편입됐다.

2015년 1000억원에 못 미쳤던 (주)두산의 영업이익은 박 회장 취임 이듬해인 2017년 1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영업이익은 지난해(1조2159억원)보다 10% 가까이 증가한 1조3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증권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3년 연속 영업이익 ‘1조원 클럽’ 진입이 유력하다.

팀플레이로 신사업 승부수

박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 마니아’다. 고려대 경영학과 재학 때 야구 동아리에서 2루수로 뛰기도 했다. 팀플레이와 인재 육성을 중시하는 그의 경영 스타일은 야구선수 시절 쌓은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산이 끊임없이 무명 선수를 발굴해 키워내는 ‘화수분 야구’를 하는 것도 박 회장의 경영 철학과 닮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평소 임원들에게 “기업의 성과는 개인이 아니라 팀플레이의 결과로 나타날 때가 많고 팀플레이로 이룬 성과가 훨씬 크고 지속적”이라고 강조한다.

취임 4년차를 맞은 박 회장은 (주)두산의 양대 신사업인 연료전지와 2차전지용 전지박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 연료전지(두산퓨얼셀)와 전지박(두산솔루스) 사업을 분할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