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00세 시대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일본은 최근 100세 이상 인구가 처음으로 7만 명을 넘었고 2029년이 되면 18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 100세 이상 인구가 지난해 11월 기준 4232명에 달했다.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 속도로 2017년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 14% 이상)에 진입한 데 이어 초고령사회(20% 이상)가 되는 시점도 앞당겨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같은 급속한 고령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의 노후 준비는 미흡한 실정이다. 사실 10여 년 전부터 10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노후 준비 상태가 뚜렷하게 개선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당장 현재를 살아가기도 빡빡한 형편이라 노후를 대비하기 힘들다는 사람이 많다. 어떤 이들은 노후 준비에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할지, 현재 자신이 준비한 것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게 복잡하고 어렵다고 한다. 이런 이유들로 노후 준비는 나중으로 미뤄진다.
‘은퇴’가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하기 시작했던 2010년 즈음, 노후 준비 자금을 계산하는 게 유행이었다. 우선 자신의 은퇴 연령을 예상하고, 3층 연금 준비 상황과 자산부채를 파악해서 노후자금 준비 정도를 진단하는 식이다. 이때 사실관계를 꼼꼼하고 정확하게 파악할수록 노후 준비 진단 결과는 정확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이것저것 확인하고 알아봐야 할 게 적지 않다. 연금은 어디에 얼마나 부었는지, 내가 가진 금융상품이 무엇인지 등 챙길 게 많다. 그래서 ‘귀찮음’이 고개를 들고 노후 준비는 다시 미뤄진다.
자신의 노후 준비 상황을 정확한 자료에 근거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게 맞는 방법이긴 하다. 그렇게 하려다 귀찮아서 미뤄 버리는 게 문제다. 일단 자신의 노후 준비에 대해 주관적 평가부터 해보자. 주관적 평가는 복잡한 준비가 필요치 않다. 어림짐작으로 자신의 상황을 평가하는 걸로 충분하다. 미뤄두었던 노후 준비 문제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다.
이런 주관적 평가는 객관적 평가 못지않게 나름의 중요성이 있다. 스스로 노후 준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향후 노후 준비 실행 여부와 실행 방법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의 노후 준비에 대한 주관적 평가는 어떨까.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2018년)에 따르면 ‘본인과 배우자의 노후 준비 상황은 어떤가’라는 질문에 ‘아주 잘 돼 있다’와 ‘잘 돼 있다’가 각각 1.6%와 8.1%에 불과했다. 이어 ‘보통이다’ 36.5%, ‘잘 돼 있지 않다’ 35.7%, ‘전혀 돼 있지 않다’ 18.1% 등이었다. 절반 이상은 노후 준비가 잘 돼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미국에선 근로자들이 노후 준비에 대해 갖는 자신감의 수준을 조사한다. 올해 이뤄진 은퇴확신조사 결과, ‘기본 노후 생활비를 충분히 준비할 수 있나’에 ‘매우 자신 있다’와 ‘자신 있다’가 각각 27%와 45%였다. 근로자 4명 중 3명 정도가 기본적인 노후 생활비는 준비할 수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노후 의료비를 충분히 준비할 수 있나’에 대해선 10명 중 6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장기간병비를 충분히 준비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는 2명 중 1명이 자신감을 보였다. 요약하면 기본 노후 생활비, 노후 의료비, 장기간병비 순으로 노후 준비에 자신감을 보인 사람이 많았다.
노후 준비의 중요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다. 돈이 없는 노후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상황이라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살아가느라 노후 준비를 뒷전으로 미루기 십상이다. 주관적 노후 준비 평가부터 해보자. 미국 은퇴확신조사처럼 기본 생활비, 의료비, 간병비 등으로 구분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자신의 준비상황을 좀 더 꼼꼼하게 점검하자. 연금, 보험, 예·적금, 펀드 등 금융 자산과 부동산 자산을 점검하고 앞으로 목돈이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도 생각해서 대비할 방법을 마련하자.
주관적 노후 준비 평가가 은퇴 걱정으로만 끝나버리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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