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찌민에서 북서부 쪽으로 440㎞를 달려 도착한 빈딘성의 해변마을. 이곳에 있는 베트남 새우 치어 생산업체 비엣욱 농장은 반도체공장에나 있을 법한 클린룸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최첨단 정수 시스템을 거친 바닷물은 사람이 마셔도 무방할 정도다. 다른 건물에선 비엣욱이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품종을 개량해 개발한 친어(번식을 위해 사육하는 성어)를 생산하고 있다. 최고급 품종 친어가 낳은 건강한 치어를 새우 농가에 공급한다. 비엣욱은 이런 대규모 농장 9개를 3000㎞에 달하는 베트남 해안선을 따라 보유하고 있다.
쩐꾸옥뚜언 비엣욱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새우는 베트남 최대 농수산 수출품”이라며 “지난해 38억달러를 수출해 2위 품목인 쌀(25억달러)을 제쳤다”고 말했다. 비엣욱 매출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38% 성장했다. 이 회사의 2대 주주는 지난해 375억원을 투자한 한국 토종사모펀드 스틱인베스트먼트다.
경제성장률에 투자하라
수년 전까지 한국 기업에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는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였다. 이젠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들 국가의 저렴한 인건비가 아니라 경제성장에 베팅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면서다. 베트남 경제는 지난해 7.1% 성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5.4%까지 떨어졌던 성장률이 꾸준히 회복돼 10년 만에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정치도 비교적 안정적이고 인구도 젊어 당분간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SK그룹이 지난해와 올해 베트남 1, 2위 민간기업인 빈그룹과 마산그룹에 연이어 투자한 것도 국가 성장세에 주목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SK는 이들 기업에 투자하면서 ‘K머니(한국의 글로벌 투자자금)’도 끌어들였다. 국민연금은 SK와 함께 마산그룹에 1700억원, 빈그룹에 2300억원을 투자했다. 스틱인베스트먼트와 IMM인베스트먼트도 투자에 참여했다.
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회장은 “평균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하면 투자수익률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이 저성장의 늪에 빠진 상황에서 국민 재산을 지키려면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에 자산을 배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결핍은 투자 기회
베트남보다 성장 속도는 다소 느리지만 인도네시아도 국내 투자회사가 주목하는 시장이다. 2억7000만 명이 사는 세계 4위 인구 대국인 데다 정보기술(IT), 금융 등의 수준이 아직 낮아 성장 잠재력이 높기 때문이다.
국내 벤처캐피털(VC) 한국투자파트너스와 인터베스트가 총 900만달러를 투자한 C88은 인도네시아 금융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미국 국적의 J P 엘리스 C88 대표는 2004년 우연히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가 인구 대부분이 은행 등 금융 서비스에서 소외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자 2013년 핀테크 창업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의 대표 서비스는 신용평가. 자체 개발한 머신러닝 프로그램으로 고객의 쇼핑, 휴대폰 사용내역 등을 분석해 신용점수를 매긴다. 월 이용고객은 2500만 명에 달한다. 3년 안에 기업공개(IPO)에 나설 계획이다. C88은 인도네시아(cekaja)에 이어 필리핀(eComparaeMo)에도 진출했다.
미래에셋대우와 네이버가 1조원 규모의 ‘미래에셋·네이버 아시아그로쓰펀드’를 설립한 것도 이처럼 ‘결핍을 메우기 위한 혁신’에 투자하기 위해서다. 미래에셋·네이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베트남 현지 운용사 비나캐피털벤처스의 칸 트랜 파트너는 “베트남에선 인구의 60% 이상이 은행 계좌가 없고, 전자상거래의 90%가 현금으로 결제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 물류, 교육 등 전 분야에 걸친 비효율성을 없애는 과정에 투자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 투자소득수지
경상수지를 이루는 주요 항목으로,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배당 및 이자소득(투자소득수입)과 외국인이 한국에서 거둔 배당 및 이자소득(투자소득지급)의 차액을 의미한다. 한국의 투자소득수지는 2010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호찌민=유창재/자카르타=김채연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