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9월 29일 오후 4시30분
외환위기 당시이던 1998년 프랑스 회사에 팔린 국내 1호 유리회사 한국유리공업(브랜드명 한글라스)을 토종 사모펀드(PEF)가 되사온다.
2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내 사모펀드인 글랜우드PE는 최근 프랑스 생고뱅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유리공업 지분 100%를 3300억원에 인수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유리공업은 1957년 설립된 국내 1호 유리회사다. 건설자재와 자동차 유리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며, KCC와 함께 국내 유리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외환위기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1998년 생고뱅에 매각됐다.
생고뱅은 1665년 베르사유궁전의 명물 ‘거울의 방’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세계 최대 유리 및 건축자재업체다. 한국유리 인수 이후 매년 안정적 이익을 내는 알짜기업으로 키워냈으나, 자산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매물로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유리 인수전에는 글로벌 PEF들이 뛰어들어 상당히 공을 들여왔으나 글랜우드PE가 이들을 물리치고 인수를 성사시켰다. 글랜우드PE는 국민연금, 교직원공제회 등 순수 국내 기관투자가로 이뤄진 펀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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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리 인수한 글랜우드PE "신사업 진출…회사가치 높일 것"
“외환위기 때 해외로 팔려간 회사를 국내 토종자본이 되사들였다는 데 의미가 크다.”(IB업계 관계자)
프랑스 업체에 매각된 지 20년 만에 주인이 국내 자본으로 바뀐 한국유리공업은 6·25전쟁 직후인 1957년 국가재건사업 일환으로 설립된 국내 최초의 유리제조업체다. 고(故) 최대섭 전 명예회장과 이봉수 전 신일기업 회장이 공동 창업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며 국내 건설 및 산업 주요 자재로 유리가 활용되면서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세 경영으로 접어든 1990년대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며 위기를 맞았다. 두 창업주의 사이가 돈독했던 반면 2세들은 대립하면서 주식 매입 경쟁이 빈번히 일어났다. 한국유리공업의 경영권 분쟁은 한국 시장 진출을 노렸던 생고뱅에는 기회였다. 생고뱅은 세계 최대 유리 및 건축자재업체다.
생고뱅은 1996년 한국유리공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회사 주식을 사들였고 창업 가문의 지분율과 맞먹는 주식을 확보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한국유리공업이 경영난에 빠지자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율을 20.99%까지 끌어올리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이후 생고뱅은 2005년까지 지분을 80.4%로 늘렸고, 2018년에는 공개매수를 통해 증시에서 자진 상장폐지했다.
한국유리공업은 생고뱅 인수 이후 정상 회사로 탈바꿈했다. 2010년대 들어 중국 등 저가 외국산 제품에 밀리며 실적이 줄었지만 보랭·단열재로 활용되는 코팅유리 등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로 반전을 이뤘다. 회사 매출은 2015년 이후 해마다 연평균 5% 이상씩 불어나고 있다. 고부가가치 제품의 판매 비중이 늘어나면서 영업이익 역시 개선되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550억원, 91억원으로 전년 대비 3%, 33%씩 증가했다.
하지만 생고뱅은 지난해 주가와 실적 하락에 대응해 세계 10여 개 자산을 정리하기로 했고, 한국유리공업도 그 대상에 포함했다. 알짜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글로벌 사모펀드(PEF)와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이 상당히 공을 들였으나 주인은 국내 PEF인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에 돌아갔다. 글로벌 투자회사를 제치고 토종자본인 글랜우드PE가 인수를 성사시킨 것은 2016년 프랑스계 업체인 라파즈홀심이 보유한 라파즈한라시멘트를 인수한 것이 계기가 됐다. 라파즈한라시멘트 인수 이후 투자금 회수에도 성공하면서 ‘글랜우드’라는 PEF가 프랑스 업계에서 일약 부상했다.
글랜우드PE는 골드만삭스 출신인 이상호 대표가 이끌고 있는 PEF로 차별화된 투자전략으로 이름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일부 PEF들이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 수익을 늘리는 것과 달리 글랜우드PE는 신사업 진출 등으로 오히려 고용을 늘려 회사의 가치를 높인다”며 “한국유리공업 투자에서도 코팅 유리를 비롯해 새로운 사업을 키우기 위해 인력을 보강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훈/정영효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