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모의 데스크 시각] 경제도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나

입력 2019-09-29 17:25
수정 2019-09-30 00:28
조국 사태가 청와대와 검찰의 대결로 치닫는 형국이다. 결말이 어떻게 날까 국민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의혹은 차고 넘쳤고, 자질은 국민 눈높이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잃을 게 별로 없을 것’이란 정치공학적 판단을 보면 경제정책도 그런 식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실제 탈(脫)원전은 환경단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는 노동계를 향한 배려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았다. 부작용이 속출했지만 정책 선회를 하지 않는 건 30~40%의 ‘집토끼’를 놓칠 수 없다는 계산과 맞물려 있고, 포퓰리즘적 청년 수당과 100만 개의 세금 일자리 역시 지지층 확대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실패로 끝나가는 소주성

경제정책의 핵심인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은 어떤가. 저소득 근로자의 임금을 올려주고, 병원비 같은 지출 부담을 줄여 가처분소득을 증대시켜 소비와 성장을 유도하겠다는 가설이다. 2년간 최저임금 29% 인상,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문재인 케어’, 각종 복지수당 확대 등이 그 수단이었다. 하지만 소주성을 떠받쳐온 기둥은 재정이었다. 최저임금 급등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더 많은 실업급여(올해 8조원)를,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과 노인에게 세금으로 급조한 단기 알바(4조원)를, 인건비 부담을 호소하는 소상공인에겐 일자리안정자금(3조원)을 퍼부었다. 문재인 케어에는 5년간 42조원이 투입된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주성 실험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저소득층의 근로소득은 줄었다. 소득격차는 역대 최고치로 벌어졌다. 소비는 오그라들고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였다. 연간으로 2%대 성장이 무너질 수도 있다. 이런 대참사에도 “소주성은 세계적으로 족보가 있는 이야기”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경제관료들은 더는 토를 달 수 없게 됐다. 재정 살포는 더 격렬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9% 증액한 513조5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총수입보다 31조원을 더 푸는 역대 최대 적자예산 편성이다. 기재부는 이런 식으로 늘어날 국가채무가 올해 741조원에서 2023년 1061조원에 이를 것이라며 재정확대를 예고했다.

재정 파탄 두렵지 않나

‘재정중독’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국민의 영혼까지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무상복지는 일할 의욕을 꺾고 정부에 더 의존하게 한다. 베네수엘라는 복지 포퓰리즘의 최후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결정판이다. 차베스의 후계자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해 국가부도 위기에도 재선에 성공했다. 더 강한 복지정책을 펴 절대다수인 빈민층의 지지를 모았다고 한다. 최근 5년간 이 나라 국민의 11%인 340만 명이 외국으로 떠났다. “국민의 삶을 전 생애에 걸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문 대통령이 지난해 장관들을 모아놓고 한 말이다. 재정을 더 풀겠다는 뜻인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묻고 싶다. 국민의 피와 땀이 맺힌 혈세다. 나라 곳간을 채우려면 기업이 성장하고 일자리가 늘어야 한다. 그래야 법인세와 소득세가 늘어나고 복지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

2016년 말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이라는 직업은 릴레이 주자와 같다. 바통을 받아 최선을 다해 달린 뒤 다음 주자에게 건넬 때는 좀 더 진전을 이뤄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잘해냈다.” 문 대통령은 차기 정권에 어떤 바통을 넘겨줄 것인가. 텅 빈 곳간을 넘겨줄 것 같아 걱정이다.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