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또다시 대혼란이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확대 시행하거나 계도기간(감독·처벌 유예기간)이 종료될 때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지난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21개 ‘특례 제외 업종’의 계도기간이 이달 말로 종료되면서 곳곳에서 우려와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특례 제외 업종의 1047개 사업장(300인 이상), 근로자 106만 명이 그 대상이다. 고용노동부는 내달부터 업종별로 표본을 뽑아 주 52시간제 준수에 대한 현장점검에 들어간다. “별문제 없을 것”이라는 고용부의 장담과 달리, 현장 목소리는 딴판이다.
무엇보다 본격 입시철을 맞은 300여 개 대학이 초비상이다. 내년 2월까지 6개월간 수시·정시 원서 접수, 전형·면접 등 업무가 폭주하는데, 곧이곧대로 법을 지키다가는 입학행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서다. 지원자가 많게는 수만 명에 달하는데 등록금 10년 동결로 입학처 신규 충원이 어려워 집중 야근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대학들은 호소한다. 편법으로 초과근무를 해도 기록을 안 남기겠다는 대학도 있다. 현실에 눈감은 정책을 강행하니 현장에서는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주 52시간제 적용이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중소기업(50~299인)들도 다급하기는 마찬가지다. 중소기업 10곳 중 4곳꼴로 준비가 안 된 상태인데, 이를 보완할 탄력근로제 적용기간 연장(3개월→6개월) 법안은 국회에서 긴 잠에 빠져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참다못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의 간담회(25일)에서 “시행을 1년 유예해 달라”고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여건이 안 됐는데 강제로 시행하지 말아 달라”는 탄원이다.
대학과 중소기업들은 주 52시간제를 전면 거부하려는 게 아니다. 현실을 봐가며 자연스레 안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이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경제관계장관회의 때 (보완을) 적극 건의하겠다”고 약속할 만큼 정부 내에서도 문제점을 모르진 않는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로 대기업도 허덕이는 판에, 충격 흡수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로선 정부가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일 때마다 평지풍파의 날벼락이나 다름없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근로시간을 줄여 가는 것은, 우리 사회가 중장기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당위성에만 치우친 ‘과속 정책’으로는 더 크고 광범위한 부작용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정부 기대와 달리 주 52시간제가 일자리를 늘리기보다 거꾸로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국면에 주 52시간제 강제가 잡셰어링 같은 긍정효과보다 고용 감소를 앞당길 것이란 경고는 진작부터 나왔다. 생존을 걱정하는 중소기업들은 되레 고용을 줄여야 할 처지라고 입을 모은다. 지불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도 주 52시간제 시행 전 1년과 시행 후 1년간 고용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국내 투자가 감소하는 데도 인력 대체용 기계 발주는 늘고, 해외 직접투자가 올 들어 사상 최대라는 현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을 위한 주 52시간제인지, 이제라도 돌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