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의 ‘먹튀’를 막아라.”
2006년 3월 22일.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미국계 사모펀드(PEF)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으로 4조원 넘는 차익을 챙겨 나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당시 외환은행을 인수하기로 했던 국민은행은 지분 65%의 대가로 무려 6조3346억원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내야 하는 세금은 한 푼도 없었다. 2003년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3800억원에 사들인 소속 펀드가 이중과세 방지 협정을 맺은 벨기에 법인이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여파로 큰 고통을 겪었던 국민 다수가 심한 박탈감과 분노에 사로잡혔다. 당장 매각을 중단하라는 국회와 시민단체, 전국금융산업노조의 요구가 빗발쳤다. 여론을 등에 업은 검찰은 3월 30일 서울 역삼동 론스타코리아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감사원도 과거 외환은행의 헐값 매각 의혹 재조사에 들어갔다.
온 나라가 외국 자본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는 분위기에 경제 관료들은 크게 당황했다. 한국을 동북아시아 금융허브(중심지)로 만들어 ‘호랑이(거대 금융회사)가 뛰어놀게 하자’는 당시 국정과제를 계속 추진했다간 정치적 역풍에 맞닥뜨릴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홍콩, 싱가포르와 경쟁한다는 금융허브의 원대한 청사진은 사실상 껍데기만 남는다. 대신 외국 자본에 맞설 ‘집고양이’를 키우자는 하위 실천 과제가 급물살을 탔다. 과제명은 ‘자본시장 관련 법의 통합’이었다.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 구상
금융허브 구상의 뿌리는 김대중 정부가 2002년에 그린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였다. 한국은 2000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공식 졸업한 직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한국 제조업이 첨단기술의 일본과 저임금의 중국 틈에 끼여 신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기업그룹은 1999년 대우그룹 워크아웃에 놀라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빚 갚기에 열중했다. 은행들도 기업금융을 줄이고 안전한 가계 주택담보대출에만 매달렸다.
21세기 생존 전략을 고민하던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해인 2002년 새해 기자회견에서 물류산업에 중심추를 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 밑그림을 공개했다. 녹슨 제조업 성장엔진을 서비스업으로 갈아 끼운다는 비장한 각오가 담겨 있었다. 후속 작업으로 그해 4월에는 경제특별구역으로 인천 송도·영종도·김포매립지(현 청라) 개발 계획을 공개했다. 글로벌 기업들에 파격적인 혜택을 준다는 숙제는 다음 정부에 넘겼다.
물류에서 금융으로 선회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 구상은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큰 변화를 겪는다. 2003년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참여정부 국정과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경제 분야 핵심 추진 과제로 새롭게 금융허브를 추가했다.
물류허브를 뒷전으로 밀어낸 이 결정에는 민간 금융 엘리트들의 역할이 컸다. 서울파이낸셜포럼에 속한 김기환(당시 골드만삭스 국제고문), 윤병철(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은 “금융 분야의 경쟁력 없이는 비즈니스허브를 건설할 수 없다”며 인수위를 설득했다. ‘빅뱅’으로 불리는 1986년 영국의 금융규제 완화 정책을 뒤좇으면 한국이 중기적으로 동북아 금융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노 대통령은 지식서비스산업을 키우면 심각한 청년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솔깃했다. 훗날 그는 “고학력 인력 때문에 금융·법률·회계 같은 기업지원 서비스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12월 청와대에서 회의를 열어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 로드맵’을 최종 확정한다. 여기에는 글로벌 50대 자산운용사의 아시아지역본부를 여럿 유치하고 2020년엔 홍콩, 싱가포르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야심 찬 목표가 담겼다.
자산운용업 특화 전략
‘숲을 키우면 호랑이는 저절로 온다.’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도약 전략은 간명했다. 자산운용업 분야에서 매력적인 환경을 제공해 홍콩, 싱가포르와 경쟁한다는 논리였다.
한국의 자산운용시장은 높은 성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외환보유액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았다. 국민연금 운용자산은 2003년 100조원을 넘어선 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부동산에 80%나 쏠려 있는 가계 자산은 금융투자업계 관점에서 ‘긁지 않은 복권’으로 여겨졌다.
정부는 2005년 7월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숲을 가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싱가포르투자청(GIC)을 본뜬 국부펀드가 돈을 나눠줘 글로벌 운용사들을 불러들인다는 구상이었다. 같은 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고 연기금의 주식 투자도 전면 허용해 자본시장에 현금이 꾸준히 흘러들게 했다. 천수답(天水畓) 증시를 밀림으로 키우기 위한 대수로 공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호랑이가 찾아오지 않자 관료들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외국 자본의 눈엔 여전히 정부의 과도한 개입 가능성과 복잡한 규제 등 숲 곳곳에 ‘가시덤불’이 널려 있었던 탓이다. 이런 시각차는 2005년부터 달아오르는 ‘외국 자본의 먹튀 논란’과 함께 더 벌어져 간다.
외국 자본과의 동상이몽
“국세청에서 나왔습니다.”
골드만삭스가 진로 부실채권 투자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2005년 4월. 국세청 직원들이 골드만삭스, 론스타, 뉴브리지캐피탈 등 외국 금융회사의 서울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조세회피처에 세운 펀드를 이용해 차익을 챙긴 거래를 파헤쳐 세금을 받아내려는 의도였다.
전격적인 세무조사로 시작한 파상공세는 정부와 외국 금융회사 간 갈등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는 이 같은 갈등 상황을 전면에 드러냈다. 금융허브를 추진하면서 외국 자본을 차별하는 ‘정신분열증적 행태’라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세무당국과 외국 금융회사 간 싸움이 장기 소송전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을 감지한 경제 관료들은 동북아 금융허브란 꿈을 접는다. 이들은 2005년 6월 대통령 보고서에서 “최근 외국 자본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의견이 있어 국민적 컨센서스(공감대)를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새로 넣었다. 호랑이를 끌어들이자는 원대한 초기 구상은 시기상조라는 뜻이었다. 이런 판단은 2006년 봄 검찰의 론스타 압수수색과 더불어 확신으로 굳어진다.
‘한국판 골드만삭스’ 구상
“자본시장 관련 법을 통합하겠습니다.”
진동수 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은 2005년 6월 금융허브 로드맵을 재검토·보완하는 청와대 회의에서 자본시장 관련 법안의 통합 계획을 발표했다.
당초 빅뱅 모델에 기초한 금융통합법에서 한발 물러선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은 증권·선물·자산운용·신탁·종금업의 칸막이 제거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관련 산업을 전쟁터로 만들어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우자는 이 계획은 공허한 금융허브론을 밀어내고 금융산업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다. 당시 삼성·현대(현 KB증권)·대우(현 미래에셋대우)·우리(현 NH투자증권) 등 5대 증권사의 평균 기업가치(시가총액)는 1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미국 5대 증권사의 2% 수준이었다.
정부는 금융산업이 결과적으로 거대 은행, 증권, 보험사 세 축으로 재편하는 지각변동을 겪을 것으로 기대했다. 법 통합을 지휘한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영국 빅뱅의 10배에 이르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바람을 넣었다. 오랜 보완 작업을 거친 자본시장법은 2009년 2월 시행이 예고됐다. 하지만 시행 직전에 찬물을 맞는다.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것이다.
이루지 못한 꿈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몰고온 글로벌 금융위기는 빚을 먹고 성장하는 금융산업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연쇄 파산에 겁먹은 국내 증권사들은 주식 중개(위탁매매) 등 안전한 영업에만 집중했다. 시장금리 급락에 따른 대규모 채권 평가차익으로 중소형사의 도태나 인수합병(M&A)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은 2019년 9월 현재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기준 세계 36위에 머물고 있다. 경쟁 상대로 삼았던 홍콩은 뉴욕(1위)과 런던(2위)에 이은 3위, 싱가포르는 4위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도 아직은 먼 이야기다.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의 기업가치는 약 5조원으로, 골드만삭스 750억달러(약 90조원)의 6% 수준이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