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의 특허 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배제하면서 수급이 힘들어진 반도체 소재·부품 분야의 특허 경쟁력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특허는 상당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해외 특허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 쓰이는 폴리이미드 분야는 정부 출연 기관이 일본에 특허를 낸 사례가 아예 없었다.
대한변리사회는 2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소재부품 기반 기술 국산화를 위한 원천특허 대책 특별위원회’ 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대책위는 지난달 23일 변리사 47명이 모여 발족했다. 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선 품목별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두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특허들을 분석했다.
폴리이미드 분야가 격차가 가장 컸다. 일본 기업과 기관들은 자국 특허 중 53%를 미국 등 해외에도 출원했다. 반면 한국은 이 비중이 40%에 그쳤다. 특허 출원 국가 수도 차이가 났다. 한국은 평균 2.4개국에, 일본은 3.6개국에 특허를 출원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대학들은 해외 특허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화학연구원(38건), KAIST(12건), 연세대(11건) 등이 보유한 불화 폴리이미드 관련 특허 112건 중 일본에 등록된 기술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조우제 대책위 소위원장은 “기술에 자신이 없거나 기술을 특허로 보호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기판 제작에 쓰이는 포토레지스트 분야도 상황이 비슷했다. 국내 등록 특허만 따져도 64%를 일본이 차지하고 있다. 다만 포토레지스트 분야에서 최고 기술 수준이라 할 수 있는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 관련 특허는 한국과 일본 모두 출원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회로에 패턴을 새기는 식각 공정에 쓰이는 불화수소 분야는 일본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전 세계 불화수소 관련 특허의 절반을 일본(46%)이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이 보유 중인 특허는 전체의 8%에 불과했다. 세계 불화수소 시장에서 일본의 점유율은 70%가 넘는다. 국내 기업들은 필요한 물량의 95% 이상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전광출 대책위 위원장은 “소재 부품 분야는 특허 양은 물론 해외 출원 건수 등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에서도 한국이 열세”라며 “정부가 연구개발(R&D) 계획을 짤 때 특허까지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