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 터부시한 ‘장사리’…과연 배척이 정답일까?|목탁 같은 작품이나 그 공허만이 닮았을 뿐[김영재 기자] 평균 나이 17세·훈련 기간 2주에 불과한 학도병 유격대가 문산호를 타고 장사리로 향한다. 허나 작전에 성공한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고립감과 허기뿐인데….25일 개봉한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감독 곽경택, 김태훈/이하 장사리)’은 때리면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작품이다. 속이 텅 비었다는 뜻이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772명의 학도병이 양동 작전으로 경북 장사리 해변에 상륙한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본작은, 유격대를 이끄는 이명준(김명민) 대위 등 기간병 비중을 축소하면서까지 기하륜(김성철)·최성필(최민호)을 비롯한 여러 학도병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하지만 그들의 필사적 전투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끝까지 냉정함을 유지한다. 소위 ‘애국 영화’에 대한 병적 터부가 작품 전반을 지배해서다.만일 ‘장사리’가시험지라면 감독은 그 시험지 위에 왜 학도병은 전쟁에 나가야 했는가에 대한 답을 충실히 적어 내려간다. 엄마에게 인정받으려고, 인민군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빠를 살리고 싶어 그들은 낡은 장총을 손에 쥔 채 장사리에 간다. 하지만 애국의 빈자리를 채우기에 그 설명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아쉽다. 작전이 기밀에 부쳐진 탓에 군번도 없이 잊혀 가던 학도병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옳은 일이다. 장사상륙작전을 담백하게 그려 낸 데는 분명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예우가 큰 영향을 끼쳤을 터.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아니지 않나. 영화적 작법으로 감정에 풍랑을 일으켜야 할 의무가 상업작에는 있다.같은 제작사(태원엔터테인먼트)가 만든 다른 한국전쟁 영화를 보자. 영화 ‘포화 속으로’에서 강석대 대위는 눈앞의 오합지졸 학도병에게 다음을 말한다. “학도병은 군인인가 군인이 아닌가. 너희들의 조국이다 반드시 지켜낼 거라 믿는다.” 후에 그 부탁은 “학도병은 군인”이라는 다수의 자발적 함성으로 증폭돼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인천상륙작전’ 역시 마찬가지다. 장학수 대위는 서로 싸우는 부대원을 말리며 “단 한 명만 살아남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일갈한다. 과연 애국은 무조건 배척해야 마땅할 것일까. 또 장사리에 잠든 잊힌 영웅들에게 애국을 덧입히는 일은 그릇된 작법일까.그간 애국이 반공의 일환으로 소모된 것은 맞다. 하지만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4월 판문점 남측 지역으로 내려 온 이상, 애국은 프로파간다에 의해 자라나는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피어나는 일반적 감정이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철 지난 애국 영화’를 피하려다 ‘단순한 한국전쟁 영화’가 태어난 꼴이다. 하나를 택하라면 차라리 전자가 낫다.목어(木魚)―수도승에게 교훈을 주고자 낮밤을 통틀어 눈 감는 일이 없는 물고기를 본뜬 도구―에서 유래한 목탁의 사용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불공을 올릴 때 불구(佛具)로써 사용하는 것이고, 이를테면 ‘사회의 목탁’처럼 세상을 깨우쳐 바르게 인도하는 이를 지칭할 때도 목탁을 쓴다. 하지만 ‘장사리’는 그 공허만이 목탁과 유사할 뿐 ‘충무로의 목탁’으로는 영 탐탁지 않은 작품이다. 누가 좀 “장사리 해변에서 죽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이 세상을 멋지게 살았을 청춘”을 기억하는 일에만 매몰된 제작진을 구해줬으면 싶다.‘장사리’는 할리우드 배우 메간 폭스가 한국전쟁의 지난(至難)한 실태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분투하는 종군 기자 매기 역을 맡아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가렛 히긴스 등에 영감을 얻은 캐릭터로,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로만 그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아마 이번 영화는 그에 대한 편견을 깨는 일종의 시금석이 될 전망. 배우 김성철과 최민호의 연기도 ‘장사리’의 매력 중 하나다. 특히 김성철은 인간의 칠정 중 미움(惡)과 사랑(愛)을 오가는 연기에 마지막에는 욕망(欲)과 슬픔(哀)을 동시에 녹여냄으로써 앞으로 더자주 그를 만나고 싶은 기쁨(喜)을 선사한다.104분. 12세 관람가.(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