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각규 부회장, '롯데맨'으로 40년…M&A 진두지휘하며 매출 100兆 시대 열어

입력 2019-09-26 17:39
수정 2019-09-27 02:22
“저와 함께 글로벌 롯데를 만들어 봅시다.”

이 한마디에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의 운명은 바뀌었다. 1995년 12월이었다. 황 부회장이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차장으로 일할 때다.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획조정실로 인사가 났다. 그를 추천한 사람은 신동빈 당시 롯데그룹 부사장(현 회장)이었다. 1990년 호남석유화학에서 함께 일했던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황 부회장은 ‘국제부장’이란 직함을 받았다. 이전에는 없던 자리다. 롯데는 그때만 해도 내수에 집중하고 있었다. 신 회장의 주문은 하나였다. “롯데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을 놔달라.”

이 주문은 그에게 ‘소명’이 됐다. 이후 지금까지 황 부회장은 해외 진출, 인수합병(M&A) 등 롯데의 ‘미래’를 그리는 데 전념했다.

M&A·해외 진출 이끌어

지난해 롯데는 그룹 매출 100조원을 달성했다. 24년 전 6조원 안팎이던 것이 약 17배로 늘었다. 계열사도 20여 개에서 95개로 늘었다. 해외 진출국은 미국 러시아 베트남 등 36개국에 달한다. 신격호 명예회장, 신동빈 회장을 도와 수십 년 해외시장 개척에 앞장선 황 부회장은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일을 맡았으면 끝을 봐야죠.”

황 부회장은 롯데의 해외 진출과 M&A의 ‘산증인’이다. 그가 국제부장을 맡은 뒤 롯데는 해외 진출과 기업 인수에 적극 나섰다. 많은 M&A가 그의 손을 거쳐갔다. 2010년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기업 타이탄, 2012년 하이마트, 2015년 KT렌탈, 2015년 더뉴욕팰리스호텔, 2016년 삼성SDI 케미칼사업 부문 및 삼성정밀화학 등 ‘조(兆) 단위’ M&A도 여럿 있었다.

이런 경험이 모여 그의 ‘M&A 3원칙’이 정립됐다. 우선 ‘비싸게 사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아무리 매력적인 회사라도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떨어지면 쳐다보지 않는다. 아쉬움이 남더라도 ‘전부 먹으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모기업을 위태롭게 할 여지가 있는 곳은 배제한다는 것.

중국 사업은 아쉬움 남아

경영자로서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것은 중국 사업이라고 했다.

롯데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사실상 퇴출당하다시피 했다. 그는 “경영진이 진짜 열심히 했는데 기대만큼 못 했다”며 “우리 역량을 과대평가한 면도 있다”고 했다. 이어 “중국은 아직도 늘 보고 있는 시장”이라고 했다. 당장은 어렵지만, 기회는 또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중국 경험은 그에게 많은 교훈을 줬다. 우선 자산을 골고루 분산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롯데는 중국뿐 아니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도 진출한 덕분에 충격을 다소 줄일 수 있었다. ‘애셋 밸런스(asset balance)’도 다시 생각했다. 그동안 해외 진출 국가는 중국 베트남 인도 러시아 등 신흥국 위주였다. 앞으로는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에서 사업 기회를 좀 더 많이 포착할 계획이라고 황 부회장은 말했다. 롯데케미칼이 미국 루이지애나에 공장을 설립한 것도 그룹의 이 같은 전략이 반영된 결과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

황 부회장은 롯데에서만 40년을 일했다. 사원으로 입사해 롯데그룹의 지주사 부회장에 올랐다. 그 비결을 묻자 그는 ‘끝없는 호기심’과 ‘끝을 봐야 하는 근성’을 꼽았다. 이어 “현장에는 수시로 가야 한다. 늘 대답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경험담을 전했다. “한번은 명예회장께서 ‘자네, 인도 첸나이 가봤나’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네, 8층 건물이 가장 높았고, 1970년대 부산 풍경하고 비슷했습니다’라고 답했죠. 당시 인도에서 인수하려는 회사가 있었는데 바로 사업 승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회장이 지시한 일을 무조건 했다는 건 아니다. 신 회장도 “아닌 것은 꼭 아니라고 대답해달라”고 요구하는 스타일이다. 황 부회장은 “오너가 100% 다 알 수도 없고, 지시가 모두 타당할 수도 없다”며 “롯데가 보수적이라고들 하지만 의사결정을 할 때는 유연하게 하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 황각규 부회장은…

24년 간 그룹 컨트롤타워 근무…수시로 현장 다니며 성장전략 구상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24년을 그룹의 컨트롤타워 조직에서만 근무했다. 롯데를 국내 재계 순위 5위로 끌어 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황 부회장은 195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마산고,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 입사했다. 1990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직장 상사로 맞았다. 신 회장은 당시 노무라증권 런던사무소 등을 거쳐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부임했다. 이후 신 회장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30년을 함께 일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황 부회장은 영어, 일어 등 외국어도 잘했다. 호남석유화학에서 해외 업무를 맡게 된 배경이다. 1995년 12월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국제부장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그룹의 미래를 책임지게 된다. 국제사업부는 해외사업과 인수합병(M&A) 등을 주로 했다.

2004년 그룹 컨트롤타워 이름이 정책본부로 바뀌고 신 회장이 정책본부장으로 취임했다. 인력과 자금 등 그룹 자원이 M&A와 해외 진출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황 부회장은 실무진과 함께 신 회장을 보좌했다.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 두산주류(롯데주류), 하이마트(롯데하이마트), KT렌탈(롯데렌탈) 등의 M&A 작업이 그의 손을 거쳤다.

황 부회장은 2017년 그룹의 컨트롤타워 조직이 정책본부에서 경영혁신실로 개편되면서 경영혁신실장을 맡았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지주사 체제 전환 작업도 이끌었다. 그해 10월 롯데지주가 출범하자 신 회장과 함께 롯데지주의 대표를 맡았다.

그는 요즘 ‘빠른 실행과 도전’ ‘실패를 통해 실질적인 결과를 추구하는 자세’ 등을 강조하고 있다. 40년 롯데맨으로 그가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황 부회장은 “빠른 실행과 도전으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현장을 끊임없이 다니고 연구하라”고 직원들에게 독려한다. 그 스스로도 올해 초 글로벌 정보기술(IT) 전시회 등을 다니며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직원들과 공유했다.

■ 황각규 부회장 약력

△1954년 경남 마산 출생 △1977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1979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입사 △1995년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국제부장 △2003년 롯데그룹 경영관리본부 국제팀장(상무) △2006년 롯데그룹 정책본부 국제실장(전무) △2011년 롯데그룹 정책본부 국제실장(사장) △2014년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 △2017년 롯데그룹 경영혁신실장 △2018년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

김범준/안재광 기자 bjk0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