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내년부터 개인도 쉽게 '스타트업'에 투자‥"제2의 벤처붐 일으킨다는데…"

입력 2019-09-26 17:30
≪이 기사는 09월26일(16:43)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개인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쉽게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벤처 투자자금을 공모해 주식시장에 상장한 뒤 주식처럼 실시간 거래하는 ‘기업성장투자기구(BDC)’를 통해서다. ‘제 2의 벤처붐’ 정책의 일환으로 모험자본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벤처투자 자금이 시중에 넘쳐나는 상황에서 BDC가 수익을 내지 못할 경우, 지난해 출시됐다가 관심권에서 멀어진 코스닥벤처펀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상장·코넥스·코스닥 투자하는 BDC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금융감독원, 증권사, 자산운용사, 벤처캐피털(VC), 벤처기업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모험자본 활성화를 위한 자본시장 간담회’를 열고 BDC 도입을 골자로 하는 혁신기업 자금 조달체계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은 위원장은 "중소기업 중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본 경험이 있는 기업이 0.3%에 불과하다"며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로봇공학, 가상현실,나노기술 등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기술 개발을 위해 자본시장이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BDC는 스타트업·벤처 등에 투자하는 일종의 간접투자펀드다. 일정요건을 갖춘 금융회사가 BDC를 만들어 공모를 통해 상장(IPO)한 후 기업 등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금융위는 BDC 투자대상을 지난해 11월 발표한 초안보다 확대키로 했다. 주 투자대상에 비상장기업과 코넥스 뿐 아니라 시총 2000억원 이하 코스닥기업을 포함키로 했다. 중소·벤처기업 관련 조합지분도 주 투자대상으로 넣어 세컨더리 시장(기존 벤처 투자지분을 매입하는 시장)에서 VC의 역할을 넓힐 방침이다. 다만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는 차원에서 코스닥 상장사 투자와 중소·벤처기업 구주 매입은 각각 BDC 자금의 30%로 제한하기로 했다.

주 투자대상 의무 투자비율은 애초 제시한 70%에서 60%로 낮아졌다. 나머지 여유자금 40% 중 10%포인트는 국·공채 등 안전자산에 투자하고 나머지 30%포인트는 부동산을 제외한 대상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다.

BDC 운용주체는 기존에 논의된 증권사, 자산운용사 외에 VC를 포함했다. 연평균 수탁고 1500억원 이상, 지가자본 40억원 이상, 운용전문인력 2인 이상 등의 요건을 맞춰 정부로 부터 인가를 받아야 한다.

금융위는 미국과 같이 BDC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기획재정부와 논의 중이다. 미국은 수익의 90%를 배당하는 BDC에 법인세 혜택을 주고 있다.

BDC는 투자대상회사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공시 의무를 지게 된다. 그동안 일반 개인 투자자들이 스타트업 등 비상장기업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기 어려웠던 점을 감안해 투자자보호 조치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은 위원장은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투자실패 책임에 대한 우려로 모험투자를 주저하지 않도록 감사원의 '적극행정 면책제도'를 벤처마킹한 면책제도 개편방안을 11월까지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다음달 초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코스닥 벤처펀드’ 전철밟을까 우려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BDC를 놓고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그동안 개인들이 벤처기업에 투자하기 위해선 장외시장이나 만기가 긴 벤처펀드 등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환금성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BDC는 주식시장에서 바로바로 사고 팔수 있는 데다 코스닥과 코넥스, 비상장 등 다양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수 있어 새로운 벤처투자수단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스타트업이 IPO까지 가는 데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만큼 완충작용을 할 BDC가 탄생하면 벤처생태계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DC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부정적 전망도 나온다. 올 상반기 벤처투자액은 1조8996억원으로 작년 상반기(1조6327억원)보다 16.3% 증가했다. 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업계에선 연말까지 4조원 이상의 자금이 스타트업 등 벤처로 흘러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공모로 채워진 BDC는 결국 기존 VC자금을 받지 못한 소외 영역에 투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기술이 있고 성장성 있는 기업들은 정책 자금을 줄세워 골라받을 정도로 자금이 몰려든다”며 “BDC가 좋은 기업에 투자하지 못해 주가가 지지부진 할 경우 결국 '코스닥 벤처펀드'처럼 시장에서 외면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주도로 지난해 만들어진 코스닥벤처펀드는 전체 투자금의 50% 이상을 코스닥과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공모형 코스닥벤처펀드 설정액은 연초 6958억원에서 지난 2일 5066억원으로 1892억원(27.2%) 쪼그라들었다.

하수정/오형주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