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연합군'과 경쟁하고 있는 인텔이 '메모리 홈그라운드' 서울에서 차세대 메모리 투자와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인텔 본사 핵심 임원들이 대거 방문해 한국에서 메모리 전략을 발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선 "한국 기업들이 강점이 있는 D램과 낸드 분야에서 기술력을 과시하려는 목적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인텔은 26일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메모리&스토리지 데이 2019'를 개최하고 차세대 메모리 신제품 '옵테인'을 현대자동차, 네이버, 넷마블 등에 공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현대차는 옵테인 메모리를 적용해 자율주행과 커넥티드카 시장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며, 네이버는 인텔의 2세대 제온 프로세서와 함께 옵테인 데이터센터 퍼시스턴트 메모리를 도입해 클라우드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롭 크룩 인텔 수석 부사장 겸 비휘발성 메모리 솔루션 그룹 총괄은 "데이터를 의미 있게 사용하고 이 같은 일을 하는 기업들이 정보의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실시간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메모리, 스토리지 계층 구조에서 인텔이 최첨단의 혁신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은 또 미국 뉴멕시코 란초 메모리 라인에서 자체적으로 옵테인을 생산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까지 밝혔다. 원래 '뉴멕시코 라인 매각설'까지 돌며 인텔이 메모리 사업에서 철수하고 비메모리에만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지만 인텔이 이날 옵테인 생산 계획을 밝히면서 이 같은 소문은 일축됐다. 인텔은 그동안 옵테인 메모리를 또 다른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의 공장에서 생산해왔다.
인텔이 차세대 메모리로 키우고 있는 옵테인은 D램과 낸드플래시의 장점을 합쳐 전력이 차단돼도 저장된 정보가 사라지지 않고(안정성), 처리 속도는 낸드플래시보다 빠른(속도) 특성을 갖고 있다. 2017년 인텔과 마이크론이 합작해 만든 것으로 '3D XPoint'라고 불리는 소자를 이용해 만든 제품이다.
현재 기업형 시장에서 쓰이는 메모리 계층구조를 보면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타입-낸드플래시-D램-중앙처리장치(CPU) 순으로 데이터 처리 속도와 안정성 면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데이터 기업들은 속도, 안정성, 비용 측면을 고려해 D램을 가장 많이 쓴다.
인텔은 옵테인을 통해 낸드와 D램 사이의 시장을 파고든다는 계획이다. 실제 인텔은 이날 행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 델 등 유수의 기업들이 옵테인을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선 삼성전자가 일부 노트북 제품에 옵테인을 채택했고, 이날 추가로 현대차, 네이버 등에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D램 대비 범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격이 어느 정도로 공급될지가 관건"이라며 "메모리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데이터 기업들이 볼 때 충분히 경제성 있는 가격이 매겨지면 삼성전자 같은 곳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인텔은 이날 2세대 옵테인 데이터센터 퍼시스턴트 메모리(DCPM)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128단 낸드 제품보다 더욱 집적화된 업계 최초 데이터센터 SSD용 '144단 QLC 낸드' 제품을 내년에 출시한다고 추가로 발표했다.
이미 서버 프로세서 시장에서 9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인텔이 기존 제품과 함께 이를 패키지로 판매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시장을 뚫는데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실제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인 오라클은 데이터베이스 서버 플랫폼에 옵테인 메모리를 탑재하기 시작했고, 중국 인터넷 기업인 바이두도 자신들의 서버에 인텔의 옵테인 DC 퍼시스턴트 메모리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