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과 잔소리

입력 2019-09-26 16:35
수정 2019-09-26 16:36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엑시트’의 남자 주인공은 대학 졸업 후 몇 년째 취업에 실패하고 집에서 눈칫밥을 먹는 신세다. 그는 온 가족이 참석한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 취업, 결혼 등에 대한 친척들의 오지랖 넓은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 급기야 나중에 만나는 어른들에게는 자진해서 현재 나이는 몇 살인지와 함께 “여자 친구 없고요. 취업은 아직 안 했습니다”를 쏟아낸다.

근황을 묻는 친척의 의도는 대부분 별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났으니 궁금해서 그런 것이다. 간혹 진심 어린 걱정에서 하는 말이다. 문제는 무심코 던진 질문이 정작 당사자에게는 비수처럼 꽂힌다는 거다. 설령 정말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일지라도 위로나 조언으로 다가오지 않고 잔소리로 들린다면 커뮤니케이션 효과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의 효과성을 따져보려고 한다. 흔히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인데”로 시작하는 리더와 구성원의 대화 장면을 떠올려보자. 일부러 구성원을 괴롭히려는 소시오패스가 아닌 바에야, 많은 리더들은 정말 구성원의 발전을 위해 피드백의 책임을 다 하는 것일 테다. 이때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는 구성원이 이를 짜증나는 잔소리로 듣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발전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잔소리와 건설적인 피드백은 어떻게 구분될까. 첫째, 초점이 다르다. 구성원의 일하는 방식이나 결과물이 기대에 미치지 않았을 때 ‘나’의 감정만 이야기하면 상대는 본인이 화풀이 대상이 된 것처럼 억울함만 느낄 것이다. ‘까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마음에 들지 않는 점만 골라 뱉아내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알려줘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초점을 오롯이 구성원의 성장에 맞출 때 상대도 마음을 열고 들을 준비를 한다.

둘째, 기준이 다르다. 리더 자리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기준과 구성원의 기준은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요즘같이 무섭게 변하며 여러 변수가 있는 시대에 꼭 리더의 기준이 맞으라는 법도 없다. 따라서 리더가 경험한 과거의 기준만으로 상대를 정의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구성원이 현재 어떤 상황이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피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상대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

정리하면 내 처지와 기준에서 시작하면 잔소리가 되고, 상대를 헤아리는 것에서 시작하면 보다 건설적인 피드백이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전제는 평소 상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평소에는 본체만체하다가 쓴소리할 때만 나타나는 리더의 말이 진정성 있게 먹힐 리 만무하다.

김민경 < IGM(세계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