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뛰는데…첫발부터 꼬인 '30만가구 공급'

입력 2019-09-25 17:37
수정 2019-09-26 01:45

가을 들어 서울 집값이 다시 불붙고 있지만 소방수 역할을 할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방안’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작년 9월 21일 1차 택지를 발표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첫 단계인 지구지정까지 간 곳이 손에 꼽을 정도다.

25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1차 수도권 공공택지 17곳(3만5242가구) 중 지구지정을 한 곳은 경기 지역 네 곳(1만1760가구)에 그쳤다. 국토부는 당초 올해 상반기 지구지정을 완료한 뒤 하반기 지구계획 수립 및 보상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지구지정을 한 네 곳도 기한을 넘긴 지난 7월에야 절차를 마무리했다.

규모가 큰 경기 광명 하안2(5400가구), 인천 검암역세권(7800가구) 등이 지구지정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다. 작년 12월 19일 발표한 2차 택지(15만4520가구) 중 지구지정을 끝낸 구역은 한 곳도 없다. 올해 말까지 지구지정을 완료할 예정이지만 현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절반 이상이 절차를 마치지 못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주택 공급이 시급한 서울도 안심할 수 없다. 2022년까지 우선 착공하기로 한 42개 사업지 중 정상 속도를 내고 있는 택지가 세 곳이다. 알짜 부지로 통하는 옛 성동구치소, 개포동 재건마을 등이 주민 반대 등으로 제자리걸음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6월 셋째주(17일) 상승 전환(0.01%)한 뒤 13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추석 이후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는 단지가 속출하면서 서울 반포동 집값은 3.3㎡당 1억원에 육박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주택 공급 지연으로 집값 불안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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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지지구 지정 속도 내도 모자랄 판에…'상한제'로 공급 위축시켜
수도권 30만가구 공급 차질 불 보듯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을 위해 국토교통부가 작년 9월 21일 발표한 1차 택지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광명 하안2지구(5400가구)는 현재까지 진척된 게 없다. 지난해 10월 주민공람은 했지만 이후 지구지정은커녕 사전 절차인 환경영향평가도 요원한 상태다. 박승원 광명시장이 “일방적 행정”이라며 국토부와 대립각을 세운 데 이어 지역 주민들도 교통 대책 미비 등을 이유로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주요 택지 상황도 비슷하다. 한국경제신문이 수도권 1·2차 택지 진행 상황을 확인한 결과 1000가구 이상 주요 택지 23곳 중 지구지정을 했거나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나온 곳은 네 곳에 불과했다. 19곳이 9개월~1년 동안 이렇다 할 진척을 보지 못한 것이다. 주택공급이 차질을 빚음에 따라 수도권 집값 불안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차질 빚는 주택공급

국토부는 작년 ‘9·13 주택시장 안정대책’ 발표 여드레 만인 9월 21일 ‘수도권 30만 가구 주택공급 확대 방안’ 세부안을 공개했다. 규제만으론 서울 집값을 안정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3기 신도시 조성 계획도 이때 발표했다. 우선 1차 발표에선 신도시를 제외한 17곳의 택지를 공개했다. 수도권에 공공주택지구 여섯 곳(2만4960가구)을 지정하고 서울 유휴부지 11곳(9130가구)을 활용해 총 3만4090가구의 새집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들 중 지구지정을 한 곳은 의왕 청계2지구(2560가구)와 성남 신촌지구(1100가구), 시흥 하중지구(3500가구), 의정부 우정지구(4600가구) 등 네 곳뿐이다. 이들도 당초 목표 기한인 올해 상반기를 넘겨 지난 7월 말에야 지구지정을 완료했다.

작년 12월 19일 발표한 2차 택지(15만2630가구) 중에서도 지구지정 절차를 끝낸 곳은 한 곳도 없다. 이 계획에 포함된 3기 신도시 남양주 왕숙(6만6000가구)과 인천 계양(1만7000가구), 하남 교산(3만2000가구) 등은 환경영향평가 단계에 머물러 있다. 지난달 초안 공람 뒤 주민들과 보상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 중이다. 정부는 당초 올해 안에 지구지정을 끝낼 예정이었지만 현재로선 지구지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반발이 거세 공청회조차 열지 못한 곳이 많다. 고양 탄현(3000가구)은 지구지정 중간 단계인 환경영향평가 초안도 만들지 못했다. 3000가구 규모의 성남 낙생 또한 환경단체 반발에 부딪혔다. 성남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도시의 환경적 기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미 대단위 개발사업이 진행 중인 곳에 또 집을 지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헐값 보상’에 반발하는 주민들의 움직임도 격해지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주민 의견 수렴 등 사전에 갈등 요인을 줄이지 못해 목표로 한 기간 안에 30만 가구를 공급하는 게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상한제로 서울 공급 막혀

민간의 서울 새 아파트 공급도 뚝 끊길 분위기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여파다. 재개발·재건축단지는 일반분양 수입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들 제도를 적용받으면 수익성이 악화돼 추진 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1 대 1 재건축을 검토하는 단지가 늘어나는 것도 공급 위축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1 대 1 재건축은 일반분양을 하지 않거나 극소량만 하는 재건축 방식이다.

당장 2년 뒤부터 서울 공급량은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부동산114가 집계한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내년 4만1512가구에서 2021년 2만644가구로 크게 줄어든다. 분양을 제때 하지 못하고 미룬 정비사업 단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입주가 반 토막 나는 2021년은 정부가 30만 가구 공급(분양)을 시작하겠다고 못 박은 시기이기도 하다. 택지 확보가 더 늦어지면 공급부족이 가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택지조성 계획이 100% 이뤄져도 집이 부족한 상황에서 상한제가 거꾸로 공급을 조이고 있다”며 “서울에 필요한 만큼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선 정비사업 규제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석/전형진/민경진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