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기업인들이 “정치·외교 문제가 양국 기업 간 협력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한·일 정부가 대화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상대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제외로 이어지며 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두 나라 기업인들은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51회 한일경제인회의’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24일부터 이틀간 열린 이번 회의엔 김윤 한일경제협회장(삼양홀딩스 회장)과 사사키 미키오 일한경제협회장(미쓰비시상사 특별고문) 등 양국 경제인 300여 명이 참석했다.
양국 기업인들은 “한·일 경제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외교 관계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또 △제3국에서 한·일 기업 간 협업 △고용문제·인재개발 등 공통과제 해결 협력 △경제·인재·문화 교류 강화 △지방교류 활성화 등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양국 경제·외교 전문가들은 공동 성명 발표에 앞서 열린 토론회에서 베트남 등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지역에서 두 나라 기업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우광 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제조업체들과 일본 소재·부품 기업이 협력하면 서로 윈윈할 수 있다”며 “스마트 시티 조성 등 신사업 분야도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장기적으로 일본 기업에 위협이 될 것이란 진단도 나왔다. 무코야마 히데히코 일본종합연구소 수석주임연구원은 “모리타화학은 연내 가동 예정인 중국 공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고순도 불화수소 등을 납품할 계획”이라며 “한국 기업들의 소재·부품 자급화율이 높아지면 일본 이탈현상이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문재인 정부 첫 주일대사를 지낸 이수훈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를 철회하고 한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 기업들은 한국 정부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에 진출한 390개 일본 기업의 모임인 서울재팬클럽의 모리야마 도모유키 회장(한국미쓰이물산 사장)은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면서 ‘정치와 경제는 분리한다’고 말하는 한국 정부의 설명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일본 의류·맥주·여행 불매 운동은 결국 이들 업종에 종사하는 한국인 직원들을 더 힘들게 할 것”이라고도 했다.
김보형/박상용 기자 kph21c@hankyung.com